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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회귀하는 것 혹은 하나님의 제한을 해제하는 것.

ORACLE[2030] 2015. 9. 8. 00:30

육을 입은 사람으로서 그 신앙의 실체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저의 경우 믿음과 신앙의 시련이 왔던 때는 여러번 있었으나,  스스로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의 제한을 해제하고 세상의 조류를 따라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1. 의지적: 하나님의 제한을 해제.

사람은 믿음이 견고한 것 같으나 그렇지 아니하고,  신앙이 없는 것 같으나  확고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는  어느 시점엔가..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의 제한이  귀찮고  자유를 제한하는 멍에로 다가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그 통치로 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인간의 죄된 본성입니다.

일단 이 멍에를 벗어 던져 버리면 거칠 것이 없어지는 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행복해 졌는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불순종의 죄들로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예비해 주셨던 축복을 강탈당했다는 영적인 진실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성경 묵상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기쁨이었으나,  사람은 스스로 교만하여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2. 과거로 회귀하는 것.

31살 이전까지 저는 거의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좋은 신앙서적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 부터 친구로 지내던 사람들과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자주 무너지곤 하였습니다.  불신자들과 어울리면 그들의 대화에 맞춰야 하는 것과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며 따라가야 하는 고충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출신 과동문회 모임등 도 그러합니다.

그 시간 지나면 아버지하나님 앞에서 모두 회개할 거리들 이었습니다.

 2001년 9월말에 중요한 사건을 게기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돌입을 하였고,  그 이전에 알고 있던 사람들과 일차적인 단절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말(31살)에는  그 이전까지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들과 단절을 하여야 했습니다.

그 시간 이후 저는 구원론을 교정받았고,  레마(꿈, 환상, 예언)로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저에게 싸인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그 현장을!  그 장소를  직접 발로 내딛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가장 깨달음을 얻는 중 위에서 언급한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제한을 해제한 죄가 찾아왔던 적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 이며,  인간의 양면성이자 내재된 선과 악의 충돌입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관계로 자주 마주치는 분들과 친해지면서  동호회도 만들고 정기적으로 다른 팀들과 리그전, 교류전도 가지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또 불신자들과 어울리다 보니 31살 이전의 과거로 다시 돌아가,  그들과 어울리다 보면 다시 신앙의 도전과 무너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적으로 교류가 되지 않는 교제와 만남은 나중에 헛헛함과 공허함만을 남깁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불신자 이지만 믿는 신앙인들 보다 더 정직하고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복음을 전하라는 레마(꿈과 내적 음성)가 있었고,  전했습니다.

그들의 반응을 하나님께서 미리 꿈으로 보여주신 것도 여러번 있으며,  어떤 친구는 저를 조롱하고 공격할 것이라는 메시지도 주셨습니다.   또한 한 사람은 예전에 크리스쳔이었으나 지금은 더러운 하수에 몸을 담가 도저히 빠져 나오지 못하는 형상과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여주시기도 하였습니다.

@  불신자와 함께하는 데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제가 한가지 영적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신앙인이  세상을 살면서 자주 마주치며 사적인 인간관계를 맺게되는 불신자들의 영혼에 대한 책임이 부여된다는 것입니다.   가짜 신앙인이 아닌 성령받은 성도라면 반드시 레마(꿈,환상,예언)의 형태로 불신자의 영혼 구원을 위한 싸인이 오게 됩니다. 

문제는 그 명령에 순종하여 씨를 뿌렸으나,   그 반응과 결과가 아주 적대적으로 나올 때!  인간관계가 깨지거나 많이 힘들어 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때가  그 불신자들의 배후의 영들이 가장 득세하여 그들의 본색을 드러내기도 하며,  영의 다름으로 인해 완악함이 극에 달해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조롱과 비판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영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하고 예측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한가지 명확한 진리는 불신자와  더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록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한 책임이 가중된다는 것입니다.

 

[  결   론  ]

자신의 신앙의 모습과 다른 사람들의 신앙의 모습(반항, 불순종, 방탕),  불신자들의 완악한 마음을 보면서 사람은 진리에 이르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빈의 거짓 구원론을 벗어던져 그 구원의 실체를 직면하게 되면 더 느끼게 됩니다. 

항상 예수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믿음의 시련은 있을 것이고,  어떻게 하다보면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본성을 따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때마다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하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의 제한을 내팽개쳐 버리고,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나아가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겠습니다.  의지에는 굉장한 파괴력이 동반됩니다.   이 의지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쪽으로 가서는 안되죠.

@ 특정인의 구원의 기회성.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 수 있는 천부적인 능력 혹은 dna를 주었다고 봅니다.

또한 먼저 믿는 사람들을 통해 전도를 받거나,  레마(꿈,환상,예언)가 갑자기 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육을 입은 사람은 어떤 기회가 구원받을 마지막 기회였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장로였으나 세상에서는 불의하게 사업을 꾸리고 악한 열매를 맺었던 자들은 그 악한 열매가 또 다른 악한 열매들을 맺어 수많은 사람들을 아프고 다치게 할 때!   구원은 끊어져 버립니다.

마치 고무줄이나 용수철 처럼 탄성의 한계를 넘어버리는 때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아직 까지도 실로 수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성령의 견인(성도의 견인)을 굳게 믿고  멸망의 길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천국 입성할 수 있는 마지노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쭉정이 신자들을 대량 양산하고 만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결국에는 각 사람  자신이 깨달아야 했어야 할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