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와 사람의 운명.
인생을 살다보니 가장 어렵고도 풀기 힘든 것이 인간관계.. 즉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사람은 올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는 것이 큰 변수가 됩니다.
1. 인간 관계의 변수와 예측 불가능.
사람마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는 특이한 점이 발견되곤 하는데, 변수중의 하나는 자기자신도 스스로에게 내재된 문제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내부적인 것이라면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으로 이행됩니다.
@ 신앙의 문제.
세상 살다 보면 각종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무신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근본적인 인격에 대한 존중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상당한 인간관계가 진척이 된 후에 복음을 전할지 말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그런데 노방전도에서는 이것이 전복됩니다.
@ 변수, 불가 예측성.
일단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지난 과거의 일들을 가지고 본다면, 잘지내던 친구나 지인 사이에서도 한 쪽이 잘 됨으로서 혹은 잘 못됨으로서 관계에 한계를 드러내고 깨지는 사례들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소위 잘나가던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나중에 문제가 생겨 낙마하거나 추락을 거듭하게 될 때, 그 주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거나 배신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론입니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사람은 어려움을 겪어봐야 알곡과 쭉정이인 관계가 드러난다는 격언이 드러맞게 됩니다. 그런데 관계의 문제는 이처럼 획일적이지 않고 더 복잡 미묘합니다. 평등한 관계일 때에는 사이가 좋았으나, 한 쪽이 너무 잘 될 때에는 시기 질투심의 발로이든, 열등감이든 다른 한 쪽이 관계를 스탑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 말고도 사람의 말과 행동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으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고, 결국에는 정리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 지나친 자기 주장의 문제.
일문제도 그렇지만 사람마다 성격이 다양해서 맞춰주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자기 자신의 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교회 모임이건 운동하는 동호회 모임이건 리더쉽에 욕심이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의 다양성을 포섭하기 보다는 통제와 간섭을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군대 다녀온 남성분들은 모두 잘 알겠지만, 통제에는 강압과 폭력이 동반되는 것이 보통이며 이것 없으면 사실상 힘들게 됩니다. 그런데 일반 사회에서는 다른 형태로 통제와 간섭이 실현되는데, 그 리더쉽의 실현이 정해진 권위 혹은 사람들이 임의적으로 인정하는 주도권에 기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모임에서 인정된 리더쉽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결코 자기자신의 사견을 밀어 부치는 식으로는 안됩니다. 충분한 협의 없는 리더쉽의 발현은 반드시 나중에 충돌과 반발을 낳는 것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 전횡과 독재.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하는 종자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종자들이라고 쓴 이유는 이자들이 교회안에서도 마치 독보리(사탄이 뿌린 씨앗)처럼 악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태도가 내재된 인간들인데, 처음에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다가 정해진 시점이 되면 발톱을 드러냅니다. 이 사람들의 특정한 언어중에 하나는 "그 친구 그렇게 해서 되겠어!, 니가 사람들을 휘어잡아야지 말 잘듣게!" 이며 특히 협의를 요청하거나 문제가 제기되면 "그런 말을 하는 배후가 누구냐?" 등등으로 이어집니다. 일단 전횡과 독재를 성격적으로 내포한 자들은 내뱉는 말이 거칠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주를 이룹니다. 대부분의 착한 사람들이 나중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폭발을 하면, 자기 자신이 했던 악행을 돌아보기 보다는 대부분의 착한 상대방들을 비난하며 그들의 행동을 문제삼습니다. 그러고서 나중에는 쌍방 잘못일 뿐이다. 인간관계가 다 그렇고 그런것 아니겠느냐!? 로 마무리 짓게 되는데, 이쯤 되면 회복하기 힘든 시점으로 돌입하게 되는 것을 여러번 보아 왔습니다.
2. 일정한 사람의 운명.
사람은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 이 세상의 삶이 전부인 것 처럼 온통 정신을 집중하고 노력하며 살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저의 친인척 분중에 한 분이 삶을 다한 것 처럼 인생은 길면서도 짧고 덧없는 측면이 많습니다. 세상 살면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 누구나 삶을 마칠 때가 있습니다.
@ 갑자기 죽을 수 있는 것.
2004년 12월에는 그 이전에 제가 잠깐 만났던 분이 병으로 죽음을 맞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만났던 분중에 가장 키가 크고(173cm), 건강했던 분으로 경찰 시험에도 합격해 두었던 시점에 그런일이 있었는데, 신앙이 아주 좋은 자매였습니다. 78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27의 젊은 생을 마친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지라도 그 생이 짧을 수 있으며, 그것으로 그 자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만나던 당시 @@산 등산 했던거, 대학교 교정 산책, 아파트 앞 공원에서 대화 나누던 추억들이 생각납니다. 2004년 당시 본인의 상황이 많이 좋지 않은 관계로 도움을 주지 못한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고, 후회가 되었으며.. 솔직히 백혈병으로 죽음을 맞이할 줄은 미쳐 예측하지 못하였습니다. 헌혈증이 여러개 있었으나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한 아쉬움..
또 다른 사건은 제가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로, 80년생 교회 형제 자매가 교제중이었습니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것이 있다면 저와 영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모자매가 교회밖에서 결혼이 깨지고 다시 교회로 오게 되었을 때, 서울 모처의 작은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거기에 나갔다가 80년생 형제 k군을 보게 되었습니다. k형제로 말할 것 같으면 교회에서 행사때마다 미술학도로서 여러 장치나 소품을 도맡아서 봉사를 하던 성격좋고 신앙이 좋은 형제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성별만 달랐지 위에서 언급했던 78년생 자매분이랑 성격이나 교회에서 하는 활동이 많이 겹치는 것을 알 수 있군요. k형제와는 교회에서 활동하면서 또한 교회 수련회 및 봉사 활동을 하면서 친분이 있던 사이였습니다. 그 당시 교회 청년들만 600명이 넘었는데, 개개인별로 친분을 가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k형제는 당시 교제중이던 p자매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커피숍도 아니고 하필 그 시간에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한 것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약속장소에 자매분들이 따로따로 오면 상당히 애매한 시츄에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던 중 저와 약속이 있던 모자매가 먼저 도착을 하였고, p자매는 도착을 하지 않았는데... k형제가 뭔가 어색했는지 우리 둘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자리를 떳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교회에서 k형제와 p자매가 서로 대면대면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몇년 동안 교제했었는데 최근에 헤어졌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더구나 p자매는 교회에서 사무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는데, 아마도 그 약속 시점 전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본인은 영적인 사건과 함께 여러 사건 사고가 집안에 있게 되면서 그 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80년생 형제 자매가 거의 1년 간격을 두고 병으로 죽음을 맞이 하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 멀쩡하게 건강하던 청년들이 헤어지고 난 후에 몇년 안되어서 죽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는 영적으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의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의 이면과 본질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 결 론 ]
비교적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본 것이 있다면 세상일은 결코 예측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계획한 인생의 길도 외부 변수로 얼마든지 수정되고 변화됩니다. 그 가운데 인간관계는 수없이 변화하고 변형됩니다. 심지어 가족중에서도 남보다 못한 관계에 들어서게 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또한 각 사람은 뜻하지 않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절대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사람은 죽지 않을 것 처럼 살아가지만, 정해진 운명이 다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사람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만 존재하게 됩니다. 사람이 그렇게 가고나면 좀더 잘해주지 못했거나, 좀더 배려해 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거나, 왜 그렇게 짧은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을까? 많은 의문이 남습니다. 각 사람의 인생의 향방이나 목숨의 결정이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권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사례들이 아닐 수 없으며, 이 글을 쓰는 저나 이 글을 읽는 분들이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