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겸손: spiritual humbleness.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1.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내려 놓음.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인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어느 정도 내려 놓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어떤 분들 처럼 전혀 예수를 몰랐는데 천국과 지옥을 보고 성령의 불을 받아 성령 세례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로서 추천하기 힘든 사례입니다.
(1) 영적 교만 내려놓기.
타종교인 혹은 불신자라면 성경이 일반 사회적으로 어떠한 지위에 있는지? 생각해 보고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즉 더러운 개독교인들이 보는 서양 잡귀신 책이라고 생각이 들거나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종교 아편 쟁이들의 거짓 교리라고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성령 세례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과 예전에 교회를 다니면서 들었던 풍월이 있는 자들을 제가 만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의 상당수가 성경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며, 수박 겉 햟기 식의 얕은 성경 지식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영적 교만에 쌓여 있었습니다.
즉 왜곡된 성경 지식과 종교적인 관습이 그 사람들의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영인 성령님이 거하지 못하는 정신과 마음 상태가 지속된 것입니다.
(2) 마음 밭.
사람마다 마음 밭이 다르기 때문에 성경 말씀의 진리가 들려지고 읽혀져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각각 입니다. 저는 마음 밭이 옥토 밭은 아니며 의심하고 또한 돌다리도 어느 정도 두들겨 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성령 세례를 받기 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3) 예수 보혈의 은혜.
2천년 전에 한 청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자처하며 나를 위해서 모든 죄짐을 지고 죽었다가 부활하였다는 것인데... 이것이 믿어지고 확증이 되어야 하는 것이 예수 신앙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그 이전에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배워야 하는 단계가 필요하며 간절한 기도와 통회 자복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거쳐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2. 영적 겸손: 산상 수훈(sermon on the mount)에 나온 천국 입성 조건.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것은 세상의 것들(돈, 명예, 권력 등)은 모두 지나가는 것이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문이 정해져 있다는 영적인 진리를 깨닫고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1) 영적 겸손: spiritual humbleness.
영적으로 겸손한 자들은 자신의 지위나 소유 혹은 교회의 직분 때문에 교만하여지지 않습니다. 말씀에는 니골라 당(파벌, 교만으로 당짓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이 나옵니다. 또한 교회 오래 다녔다고 해서 텃새를 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겸손한 자들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성경 말씀에 비추어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성경이 배치되면 진리되신 말씀을 우위에 두고서 숙고하며 성찰할 것입니다.
(2) 반드시 제대로 된 진리 위에 서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개독교 소리를 듣고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더 탐욕을 부리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게 된 데에는 "거짓 구원론"이 뿌리가 되었으며 그 부속물로서 번영신학과 성공주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가령 마라톤 경주를 하는 자가 달리기를 하는데 정해진 루트를 벗어나 버리고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지 않았는데도 "출발하자마자 당신은 이미 결승점에 도착하였다"고 얘기를 해 주는 것과 동일한 어처구니없는 가르침을 해왔던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뛰다 말고 짜장면 집에서 짜장면이나 짬봉을 먹어 버리고 잠이 온다고 텐트 쳐넣고 잠을 자버리고 집에 일있다고 집에 가버렸는데도 마라톤을 완주하였다고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ㅎㅎ 역대 구약 대선지자들과 12사도와 사도 바울은 구원의 경주를 다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최선을 다해 달렸는데, 오늘날 목사들과 성도들은 거짓 구원론에 속은 나머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 말씀을 자기 듣기 좋은 것으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버리고 심판의 복음(의의 복음)을 현저하게 밟아버렸습니다.
[ 결 론 ]
아직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불신자들이나 형식적인 교인들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 그러니까 막는 자인 성령님이 옮겨지기 이전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구원의 여정을 시작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때가 많이 가까워 오기 때문에 저는 세상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제가 해왔던 작은 액션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얼마나 구원받을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영이 저를 감동시키지 않았다면 도무지 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1) 자신의 생각을 비워야 진리가 들어옵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이 세상의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강화시킨 자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성경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제가 이제까지 불신자들을 위하여 전도를 해 본 바로는 거의 힘든 지경에 있는 자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말을 해버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단 사이비 집단의 거짓 교리를 따르는 자들도 답이 없는 것은 매 한가지 였습니다. 아니라고 설득을 해 주어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멸망으로 치닫습니다.
(2)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는가?
성령 세례 받고 난 이후인 구원의 여정이 시작 된 후에도 얼마든지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나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신앙의 초보자들은 구원의 루트에서 벗어나 나중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만,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히 6:4~6절)" 즉 영적으로 청년이나 장성한 자들의 반열에 까지 갔다가 타락한 자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입니다.
모리스 스클라의 예언적 환상에 나오는 엘리야의 권능의 겉옷(신부들이 입는 의의 겉옷)을 입고 영적으로 장군이 되어 성령의 불사역을 하였던 목사들과 사역자들이 바로 그들이며, 오늘날 큰 교회를 이룬 대부분의 목사들이 헌금 도적질과 교회 세습으로 그 멸망의 길로 들어갑니다.
누구에게나 살아있는 육의 소욕을 어느 정도(즉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을 넘지 않는 선) 제어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정도라고 표현한 이유는 육을 입은 사람은 누구나 죄와 실수로 넘어지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짓 구원론으로 치달았던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그 자신도 이 심판의 선을 넘어버리고 성도들도 그 선을 지킬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자신을 되돌아 보는 자가 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