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글.
성령으로 거듭난 은혜의 사람.
ORACLE[신탁]
2020. 1. 3. 07:00
요한 2서 1장 3절: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Grace, mercy and peace from God the Father and from Jesus Christ, the Father's Son, will be with us in truth and love.
1. 자연 상태의 사람.
하나님의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크게 2종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사람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로서의 사람입니다.
(1) 자연 상태의 사람들의 혼돈.
저도 인생의 상당한 기간을 자연 상태의 사람으로 지냈습니다.
4계절의 신비와 자연의 아름다움, 인생의 유한성, 여러 종교들의 특징과 그것에 메진하는 여러 인생들을 보았습니다.
특히 여러 종교에 귀의한 종교인이 있고 그것을 신으로 믿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을 입은 인생의 유한함으로 인한 안식처 혹은 내세의 평안을 향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 여러 종교를 이 세상에서 융성하게 한 요소라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이러한 종교 일반론에 도달하게 되면 어떤 사람이 무교이든 자기자신을 믿든 다른 종교를 믿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모두 그 사람의 특수한 환경하에서 그 사람의 자유의지적인 선택으로 가진 종교성의 발현이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들이 재단하고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대성으로 인한 "혼돈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꿈과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영적인 영역을 직/간접으로 경험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영적인 영역에 대한 체험은 과학이나 사회 현상으로 풀어낼 수 없는 비밀한 영역입니다.
육안으로는 보여지지 않는 영적 존재에 대한 호기심 혹은 경험이 사람을 특정 종교에 흥미를 가지게 하거나, 그러한 존재들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하기도 합니다.
여러 종교들에서 설명해주는 것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에 대한 혼돈으로 또 빠져들게 됩니다.
(2) 선과 악에 대한 관념.
나이가 미성년이었던 시절에는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이 비교적 뚜렸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군대 시절 그리고 각종 사회적인 경험, 정치 좌파 우파의 갈림에서 보여지는 의견의 차이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 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매우 모호하고 어려운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 회사를 다니고 일정한 일을 하고 있는데, 자기의 먹고사는 문제와 가족 구성원들을 먹여 살려야하는 문제가 다른 사람들의 정당한 이익이나 인권 혹은 이익을 헤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행동과 대립하였을 때... 자기의 것을 내려놓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치 치하의 유태인 학살을 도모하였던 독일 장교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유태인들을 잔인하게 죽였던 사람이 자기 가족에게는 평범하고 선한 가장이자 남편이며 아버지일 수 있는 것입니다.
회사 또는 교회 또는 공동체의 가치가 어떤 사람 혹은 소수에 대한 폭력과 학대로 들어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일제 치하 해방 이전과 이후에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좌파와 우파의 대립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원래 좌파의 경제정의는 자유보다는 평등, 정통을 고수하기 보다는 개혁과 혁신을 중요시 하며, 가진 기득권 보다는 서민과 소외받은 이웃에게 더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우파는 그와 상반되게 진행됩니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좌파 종북 빨갱이, 우파 극우 수구 친일 매국노 라는 틀에 박힌 공격과 프레임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동일한 사건이나 사실을 가지고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이행하는 것입니다.
2. 성령 받아 거듭난 성도.
성령 세례 받아 거듭났다는 것은 더이상 자연상태의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의 지위를 얻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양자의 지위를 갖게되는 것이며, 내세로서는 영원한 행복의 장소인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1) 말씀에서 정해준 정의.
구약과 신약에서 정해준 하나님의 정의가 많이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이 폐해졌기 때문에 새롭게 해석해야 할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메시지는 하나님만을 섬기며 이웃에게 선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정해준 10계명을 지키며 사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불신자 가운데 상당수가 10계명이 저촉되어 교회에 나가는 것을 포기한 것을 보았습니다. 지나친 제재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세에 나타난 세상 유흥과 문화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흐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2) 세상에서 환영을 받는 목회자들의 탄생.
하나님께 충성하고 말씀의 계명을 지킴으로서 환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일에 매몰되어 이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에 충족되는 일들을 사명으로 여기면서 사역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종교 통합을 옳다고 나아가는 유명 목회자들과 성도들, 해방신학 자유주의 신학을 옳다고 여기는 자들, 좌파 우파 정치 어젠다에 올인하는 좌파 우파 정치목사들이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육을 입고 살고 있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겠지만, 저는 이러한 움직임이 위에서 언급하였던 "혼돈의 영역"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임을 여러번 지적해 드렸습니다.
비진리를 진리의 영역으로 가져와 죽기살기로 싸우는 자들이 목사와 성도들 중에서 많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성경 인용에 있어서도 자기의 처지를 강화해주는 구절만 가져와서 설교하고 설명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는 오직 예수님의 상황 판단(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이 캐논으로서 작용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 결 론 ]
예수님의 대속의 보혈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은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저도 세상 살면서 사람들과 갈등하고 싸우고 대립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가능하면 갈등 상황을 피하면서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였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니 크게 갈등이 있었던 사람들이 누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
비방자들, 조롱하고 비열한 공격을 하였던 자들,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자행했던 사람들에 대한 강한 분노와 보복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원래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거듭난 자들은 이 땅에서 메인 것을 풀어야 하며, 예수님께서 만달란트를 갚아 주셨기 때문에 자기자신에게 죄지은 자들을 값없이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실현하기 힘든 문제라는 것입니다.
말은 쉬울 것입니다.
이율배반적인 면, 말씀과 동떨어진 불순종, 선한 행위로 인해 교만하여지는 것들, 일상 생활 가운데 겪는 여러 죄들이 있습니다. 이런 죄인이 구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오직 예수 보혈의 은혜의 공로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 반역죄와 백데나리온 빚진자에 대한 것.
문제는 장차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속출, 만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자로서 백데나리온 빚진 이웃에 대한 용서와 자비의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