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글.

인생의 고통과 어둠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

ORACLE[2030] 2016. 5. 7. 13:14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순탄할 때가 있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어려움과 고통과 어두움 가운데 처해질 때가 있습니다.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시험으로 주신다는 내용이 있지만, 사람의 실체적 현실은 훨씬 처참하기도 하고 비참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1. 근본적인 것을 위협하는 것.

현시대의 자화상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삶의 문제로 절망하고 낙심하다가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시도하거나, 삶의 희망을 놓아버리고 그냥 살아간다는 것에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는 설교단에서 사람들이 왜?  상처를 받는지 모르겠다!면서  자신이 받지 않으면 될일!  이라고 이런저런 소리들을 늘어 놓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코미디 같은 설교를 들어야 했던 그 때가 가장 영적으로 위험한 때가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 사람은 견고하지 못합니다.

견고하다는 것은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것인데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그렇게 강하지 못합니다.  건강하던 사람도 외적 사고나 질병으로 큰 고통을 겪을 수 있으며, 영적인 리더였던 자들도 여러 횡령과 비리와 성스캔들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문제는 인생을 살면서 그러한 사건과 사고를 피할 수 있는가?  입니다.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상당수의 것들은 그럴 수 없으며, 그러한 상황에 처해졌을 때 사람은 끝없는 심연과 절망과 낙심과 우울감에 빠져듭니다.


@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

갈등과 다툼과 싸움을 가능한 한 피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세상을 살다보면 그럴 수 없을 때가 닥치곤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동물과는 다른 차원의 "영"이 존재합니다.  육체와 혼도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가장 근본에 해당하는 "영"이 손상을 당할 때 사람은 절망에 빠지고 회복하기 힘든 "무기력"의 상태나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의 배후에는 악한 영들의 작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그런것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세상일은 복잡하고 분별하기 힘든 것들이 많습니다.  상처는 잘 아물수도 있겠지만, 저의 경험상 대부분의 것들은 의식이나 무의식적으로 "흉터"를 남기며 그러한 트라우마를 떨쳐버리기 힘이 듭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와 사랑과 긍휼이 필요합니다.


2.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의 의미.

저는 미성년 시절 불신자였으며 여러 기독교 이단들의 괴이한 사건 사고들을 보고 들을 때 마다 "신앙과 종교"라는 신념의 체계가 얼마나 사람들을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사고로 이끌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곤 하였습니다.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이나  다미선교회 휴거 파동 등은 전국민을 떠들썩하게 하는 무서운 사건이었는데, 그것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이상한 행태를 보이는 이단 교회들이 있어서 경각심을 많이 들게 하였습니다.

특히 다미의 휴거 파동이 있을 적에는 미션스쿨 중학교 선생님들이 수업중에 그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하였고, 학교 교목으로 예배인도하던 목사님도 그런 얘기를 자주 하곤 하였습니다. 


@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

위와 같은 모든 경각심을 일으키는 선지식에도 불구하고 저는 예수님을 만났고 성령으로 거듭났으며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영을 "접신"한 것입니다.   무당들과 도사들과 점쟁이들이 모시는 신을 접신하듯이, 참 성도들은 성령을 접신하고 계시도 받으며 방언도 하고 성령의 은사도 받게 됩니다.

저는 인생의 큰 고난이 없을 때에 예수님을 만났지만, 어떤 분들은 위에서 언급한 인생의 가장 큰 절망과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만나기도 합니다.


@ 두 가지 위험.

저처럼 인생이 순탄하였을 때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신앙생활을 하였던 사람들은 그 이후에 어떤 형태의 것이든  절망적인 사고가 일어났을 때, 신앙의 근본적인 것들이 모두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러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때까지 하나님께 충성해 왔으며 이웃들에게 선을 베풀었던 모든 것들이 그렇게 절망적인 사고(재앙)로 온 것을 항변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제 자신의 인생의 성공과 형통을 위해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해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근본적인 성찰에 들어가기도 하였습니다.  주변에서는 저의 실패를 두고 조롱과 비웃음으로 일관 자들도 여럿있었습니다.  하나님도 버리더니 선으로 대했던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대할때에 신앙은 더욱 힘을 잃고 맙니다.  의로운 삶을 살았으나 세상 조류를 따라 간교하게 사는 무리들에게 마구 짓밟힙니다.  그러한 근본적인 배신감이 이제는 십자가 달고 사기꾼짓 하고 있는 교회 목사들의 가르침과 활자화된 성경이라는 책을 던져버리고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강력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인간의 나약한 측면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종교적 신념 체계일 뿐이라고 결론짓고 맙니다.

반대로 인생의 절망가운데 예수님을 만났던 분들은 나중에 삶이 회복되고 축복을 받고 형통한 가운데 나아가게 되면 변질되고 부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유명 목사들도 해방 이후 어렵고 힘든 시절에 엄청난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아 목회를 하였으나, 교회가 커지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 지면서 타락하고 배도로 들어가는 그러한 패턴을 답습하게 됩니다.  위의 두가지 경우를 보고 칼빈주의자들은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영을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단정을 짓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죠.  불과 같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보혈의 은혜를 맛보고도 나중에 신앙을 져버릴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이고, 절망가운데 쳐해져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을 마감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 연약한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 결  론 ]

현시점 이글을 읽는 분중에 인생의 고통과 고난가운데 있는 분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가 있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영으로 거듭난 자들은 오직 예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며 위로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득의양양하고 호기로울 수 있으나..   그것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며,  인간의 육체가 원하는 번영과 성공도 시간이 지나면 물거품처럼 그 사람을 떠날 것입니다.

교회다니면서 목사들에게 실망하고 사람들에게 상처받아서 아예 신앙을 져버린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얼마나 힘든 일들이 있어서 그렇게 까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신앙을 회복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에 말로서 권면은 한적이 있지만, 그들이 구원의 여정으로 다시 들어올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인생의 여러 과정 가운데 다시 만나고 회복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에서도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고 믿어야 하며, 광야에서도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만나와 메추라기의 은혜를 경험해야 하고, 가나안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그 단단한 마음의 문이 열리고 구원의 은혜에 온"영"이 참여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많은 시련과 고통속에서도 "예수" 이름으로 견딜 수 있으며, 육체의 삶이 다하여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영생과 천국의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