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영분별

(스크랩) 교회는 이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ORACLE[2030] 2017. 2. 27. 07:43


------ 네이버에 있는 무엇이든 물어보라이단 대책 연구하는 카페에서 지난 10년 넘게 수많은 글을 읽었습니다.  종교와 진리, 교회와 이단(기독교 이단 대책 연구소),  각종 교단 이단대책 연구소의  글들도 읽어보아야 합니다.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고 그들이 wcc 배도를 옹호하고 있으며 이대위 활동하던 사역자들 중 형제를 참소한 나머지 성령훼방죄를 짓고 지옥 형벌에 처한 자들이 있었지만,  알고 있으면서 참고할 사항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 연구하는 분들의 엄격한 잣대로 보면 저도 이단에 해당하고, 제가 블로그에 올린 천국 지옥 간증하는 사역자들도 모두 이단에 해당합니다.   우선 그분들은 구원론이 칼빈의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를 기준으로 하고 있고,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편협한 교리로 불의한 이단 정죄는 피해야 할 것인데, 결국은 신앙 생활하는 성도 각자가 분별하고 균형을 잡아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 안에 있는 이단

현재 한국교회 내 이단: 펠라기우스주의, 로마가톨릭주의, 종교다원주의, 신사도운동

) -->  - 최태영 교수(영남신대 교수, 예장통합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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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단에 대한 성경의 교훈

1) 갈라디아서 1:6~9

이단(“다른 복음”)에 의해 흔들리는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심정. 저주를 받을지어다(2번 반복):

이런 과격한 선언을 하는 바울에게 있는 것은 예수(진리)에 대한 사랑 그리고 교회(양떼)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 있으면 이단에 대하여 저주하게 된다. 이단에 대한 저주가 없다면, 예수와 교회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2) 마태복음 13:24~30

가라지 비유에서의 예수님의 교훈. 가만 두어라라는 말씀:

이단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 가져야 할 사랑과 인내와 권면의 필요성. 또 예수님은 교회 안에 이단이 자랄 것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가라지를 뿌리 뽑고자 하는 지나친 노력을 경계하셨는데, 어차피 가라지 문제는 심판의 때에 가서야 해결될 일이기 때문이다. 이단은 종말의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그러므로 이단에 대한 대처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에 덕 보다 해를 끼치게 된다. 이단에 대해 저주를 선포하되, 분별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2. 교회사에서의 이단 개관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들을 살펴보면 바른 교리를 확립할 수 있고, 오늘날의 이단에 대해 올바로 분별할 수 있다.

1) 고대교회에서의 이단들

삼위일체론적 이단들: 일신론, 양태론, 삼신론

바른 교리: 하나님은 언제나 삼위(성부, 성자, 성령)로 계시며, 삼위는 본질에 있어서 동등하며, 성자는 성부로부터 영원히 낳은 바 되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온바 되신다.

) -->  기독론적 이단들: 두 본성에 대한 이해 결핍

바른 교리: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이 있으며, 신성과 인성은 서로 혼합, 교환, 분리, 분열되지 않는다.

) -->  구원론적 이단들: 펠라기우스주의/준펠라기우스주의

바른 교리: 인간은 원죄로 인하여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노력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2) 종교개혁 시대의 이단들: 로마(가톨릭)교회

바른 교리: sola scriptura / sola gratia / sola fide /solus Chris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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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이단정죄가 약화됨

성경(계시) 보다 이성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하였으므로 성경적 교리에 근거한 이단 정죄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와 이성 중심의 합리주의를 주창하는 계몽주의의 정신은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 신앙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그 자체가 이단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 현대의 대표적 이단들과 그 특징

여호와의증인: 삼위일체론과 지옥심판을 부정

몰몬교: 성경외의 경전

통일교: 성경외의 경전, 종말(재림)

신천지교: 종말론(요한계시록에 대한 왜곡된 해석)

하나님의교회: 신론(어머니 하나님)

신구원파: 구원론 왜곡

3. 교회 내 이단 사상

이단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른 교리를 약화시키거나 질식시키는데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단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둘 필요가 없을 것이다불교,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와 이단에 대한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종교는 기독교의 바른 교리를 위협하지 않는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는 각자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단은 기독교의 교리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단에 대해서는 교리적으로 싸워야 하고 그것으로부터 교회를 지켜야 한다.

이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이 좋다.

하나는 이미 교회에 의해 정죄당한 집단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통일교, 구원파, 신천지교, 하나님의교회 등이 여기에 속한다.

또 하나는 교회 안에 있는 이단 사상이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암약하고 있는 비복음적 가르침을 통칭한다.

우리가 정말 위험하게 여겨야 할 것은 후자다. 전자는 이미 검증되었고, 또 눈에 잘 띄는 이단이므로 대처하기가 비교적 쉽다. 그러나 후자는 눈에 잘 띄지 않으므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전자는 교회가 비교적 잘 대처해 왔으므로 현재 그렇게 크게 위협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후자는 그렇지 않다. 보이지 않게 교회를 파괴시킴으로써 가공할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 -->  현재 우리나라 교회가 경험하고 있는 교회 안의 이단 사상 중에서 교회가 시급히 대책을 강구해야 할 대상으로 펠라기우스주의, 로마가톨릭주의,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신사도운동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1) 펠라기우스주의

교회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교부로 일컬어지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에 끼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여는 펠라기우스 논쟁과 도나투스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이단 문제에 관련되지만 그 중 더 심각한 것은 펠라기우스주의다.

라기우스의 사상은 하나님의 은총을 역설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비판을 받고 교회에서 정죄되었지만, 죽지 않고 그 이후 줄기차게 교회 안에 남아 있었으며, 오늘날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 펠라기우스 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능력에 대한 긍정에 있다.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업적을 쌓을 수 있으며, 그러므로 노력에 의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에 의하여 배격되었고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 -->  그러나 펠라기우스주의는 곧 바로 세미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로 소생한다. 준펠라기우스주의로 번역되는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과 은총론을 받아들이지만 거기에 펠라기우스의 사상을 혼합시켰다.

인간은 원죄로 인하여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구원을 향해 상당한 수준에 이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거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더해짐으로써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친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이다. 자기의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의 완성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상도 역시 펠라기우스주의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어 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세미펠라기우스주의를 포함한 펠라기우스주의는 고대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사람들이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긍정이다

인간은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인간은 위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인간에게는 무언가 본질적인 선이 있다는 것, 결국 인간은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상이 세상의 성공을 추구하는 교회에 만족을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펠라기우스주의는 마침내 중세 로마교회를 장악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16세기의 종교개혁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슬로건은 로마가톨릭교회가 펠라기우스주의에 물들어 있음을 증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sola gratia, sola fide 가 바로 그것이다. 오직 은총은 로마교회의 공로와 은총, 오직 믿음은 로마교회의 믿음과 선행이라는 공식을 타파한 슬로건이기 때문이다

로마교회의 공로와 은총, 믿음과 선행은 펠라기우스주의의 산물이다. 인간의 가능성에 근거한 펠라기우스주의가 중세교회의 미몽 속에 부지불식간 교회의 교리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공로와 은총은 인간이 노력하여 이룬 공로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더해져서 구원에 이른다는 가르침이다. 준펠라기우스 사상이다. 믿음과 선행은 믿음만으로는 안 되고 선행이 있어야 의롭게 된다는 것인데, 선행이라는 인간의 행위에 방점을 둔, 역시 준펠라기우스 사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의 교회를 펠라기우스적 이단으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가 가르친 은총의 구원론, 복음의 진리에로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난공불락의 로마교회의 교권에 의하여 도리어 이단으로 정죄를 받고 파문당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부득이하게 프로테스탄트 교회(개신교)를 형성하게 되었다.

개신교는 성경을 가르치는 복음의 진리를 회복한 교회다. 그에 비해 로마교회는 복음의 진리를 떠나 펠라기우스의 교설에 몸을 담고 있는 거대한 이단적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생각해 보면 펠라기우스주의는 펠라기우스라는 이름을 제거하고 다른 이름으로 끊임없이 교회 안에서 살아남았고, 현대 교회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더 큰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형태의 인본주의는 펠라기우스의 후손들이다. 인간을 긍정하고, 인간을 높이고, 인간의 업적을 기리는 인본주의적 행태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은총 교리를 부정하는 펠라기우스적 산물이다.   사람을 높이고, 사람을 칭송하고, 사람에게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부여하는 것은 복음의 진리가 아니라 펠라기우스주의이다.

오늘날 기독교 언론을 장식하는 수많은 인물 사진과 그들의 업적에 대한 광고들은 펠라기우스주의가 우리 기독교 안에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거라 할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인간을 높이려는 집요한 행태는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선악과, 곧 원죄의 발로일 뿐이다. 바르트는 죄의 가장 뚜렷한 양상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는 교만이라고 하였다.

개혁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라 원죄의 철저성 및 인간에게는 선이 하나도 없다는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교리가 성경의 진리임을 천명하였다.    마치 인간에게 무슨 선한 것이 있는 것처럼 서로 서로 사람을 높이고 사람의 업적(행위)을 칭송하는 이러한 죄를 용인하고 따르는 것이 교회 안에 있다면,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이단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 로마가톨릭주의

앞에서 펠라기우스주의로서의 로마교회를 보았는데, 로마교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도 이상으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집단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먼저 종교개혁자들의 슬로건 중 앞에서 말한 것 외의 두 가지를 더 보자. sola scriptura(오직 성경), solus Christus(오직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로마교회의 핵심적인 사상, 곧 성경과 전통, 그리스도와 마리아(및 성인)에 대한 비판이다.

) -->  오직 성경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개신교의 단 하나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진리의 출처는 오직 성경뿐이라는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의 자기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 성경이다. 모든 가르침의 진위는 오직 성경에 의해서만 가려져야 한다.

중세의 로마교회가 성경의 진리에 완전히 역행했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의 원리로써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로마교회는 성경 외에 전통이라는 또 다른 진리의 출처를 내놓았다. 전통이란 교회의 결정을 가리킨다. 교회회의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면 그것은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는 성경도 하나의 전통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전통이란 원리에 따라 로마교회는 성경에 없는 것을 무엇이든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7성사, 연옥설, 면죄부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로마교회가 얼마나 성경으로부터 자유로운 집단인지는 종교개혁자들을 파문하고 출교한 이후의 행보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로마교회의 감독을 교황이라 칭하며 그에게 무오한 존재로서의 권위를 부여하였다. 마리아를 제2의 중보자로 격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원죄 없이 성자를 잉태하였고, 몽소승천하였다는 교리를 선포했다. 성경에서는 도저히 근거를 댈 수 없는 그들만의 교리들이다.  그러므로 로마교회는 성경적 교회라고 부를 수 없다. 거기에다가 로마교회는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의 교회정치체제를 구축하였다.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역사상 가장 견고한 독재체제를 세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것이 로마교회이다. 이것을 필자는 로마가톨릭주의라고 말한다.

이 거대한 로마가톨릭주의는 온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종교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우리 개신교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  역사상 세계 최대의 단일종교단체인 로마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5)를 계기로 개신교와 모든 세계의 종교들의 맏형 노릇을 자임하였다.   그리고 개신교 지도자들에게도 화해의 손을 벌리며 교회의 일치를 도모할뿐더러 나아가 세계의 모든 종교를 통합하는 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인지 개신교는 로마교회에 대한 경계의식을 점점 풀어가게 되었고, 오히려 거대한 로마교회체제를 동경하는 듯하다. 우리가 눈을 들어 살펴보면 한국과 세계의 개신교 교회들이 거대한 로마교회체제를 벤치마킹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 -->  한 개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강력한 독재체제의 모델이 선호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강력한 독재체제가 거대한 국가를 만들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종교적으로도, 특히 교회에서도 통한다는 것이 비극적인 현실이다.

교회로부터 절대적인 권한을 위임받은 담임목사가 제왕처럼 운영하는 소위 대형 교회가 한국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로마교회의 대성당과 같은 거대한 예배당을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건축하고 그 위용을 과시하는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로마교회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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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는 오히려 작은 자들의 공동체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거대한 제국을 꿈꾸지 않으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다.

신약성경은 로마의 바티칸 같은 거대한 건축을 암시하는 가르침이 없다. 예수님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침 뱉음, 채찍질, 못 박힘 당하시고 조롱받으시고 수치를 받으시고 죽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그러한 길을 따르도록 가르치시고 명령하셨다.

내 나라는 세상의 것과 다르다고 하셨다. 그러나 로마교회는 세상 나라와 질적 차이가 없는 거대한 나라를 지향하여 왔다. 우리 개신교가 그러한 로마교회를 닮아간다면 이것이 어찌 교회 안에 있는 이단적 요소가 아니겠는가?

오늘날 로마교회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지 입장을 정할 필요가 있다. 루터와 칼뱅이 로마교회를 적그리스도의 집단이라고 규정했는데, 칼뱅의 정신을 계승하는 오늘의 개혁교회(장로교회)는 더 이상 로마교회를 경계하지 않는 것 같다.

종교개혁 시대보다도 로마교회는 훨씬 더 비성경적으로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더 가까워지려고 하는듯한 진보적 개신교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

최소한 교리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로마교회와의 차이를 분명히 확인하고 선을 긋지 않는다면, 거대한 로마교회체제와 그들의 이단적 교리에 동조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은 불문가지가 아니겠는가?

3) 종교다원주의

종교개혁자들의 4대 슬로건 중 마지막은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다.

로마교회가 여기에 마리아를 더하였고, 나아가 성인들(saints)을 더하여 그들의 공로가 교회 안에 쌓이고, 면죄부를 사면 그 공로를 덧입을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로마교회에 의하면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목하게 하는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뿐 아니라, 마리아, 그리고 성인들에게까지 확장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종교다원주의다.

곧 다른 종교들도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역할을 하는 소위 메시야가 있을 수 있다는 사상으로서, 그러므로 기독교는 절대적인 최고의 종교가 아니라 종교들 중의 하나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 -->  종교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가르치는 신약성경을 기독교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으로 제한하면서 그것이 만인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진리주장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그것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구원의 길이지만, 유일한 길은 아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고 구원의 진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는 이신칭의 교리를 부정한다. 루터는 일찍이 이신칭의 교리를 교회의 존폐가 달린 교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에 의하면 오늘날의 종교다원주의는 교회를 폐하는 이단이 아닐 수 없다.

) -->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의 구원론을 근본적으로 와해시키는 사상이므로 교회는 배격하지 않을 수 없는데, 유감스럽게도 서구의 신학계에서는 종교다원주의를 용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주류신학사상으로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서구권에서 기독교가 쇠퇴하게 된 것은 종교다원주의 사상의 범람으로 인하여 교회의 구원론이 무너진 데에 크게 기인한 것으로 사료된다.

작년에 성공적인 WCC 부산총회를 앞두고 진보와 보수 진영 간에 종교다원주의 논쟁이 일었던 것을 우연적인 사건이거나 불행한 사건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이제는 우리도 종교다원주의 신학에 대하여 깊이 성찰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 교단을 비롯하여 한국 교회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4) 신사도운동

신사도운동은 20세기 초반의 오순절운동, 중반의 성령은사운동, 후반의 빈야드로 대표되는 예언과 표적 운동에, 교회성장의 열망이 덧붙여져 나타난 새로운 성령운동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파급되고 있다. 전문가들의 조사에 의하면 세계 개신교의 약 40% 이상이 신사도운동의 영향권에 들어갔다고 한다.

아직 한국교회 안에 크게 침투된 상황은 아니지만 만약 이것이 교회 내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500년 개신교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운동의 정체를 잘 파악하여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

) -->  이것은 성령을 빙자한 비성경적인 운동으로 규정할 수 있는데,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지적된다. 하나는 신사도라는 직분에 관한 것이다. 1세기 때에 예수께서 사도들을 세워서 교회를 세우고 다스리게 하신 것처럼, 오늘의 시대에는 성령께서 새로운 사도와 선지자(신사도)를 세우신다고 한다.

그래서 사도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운영되는 체제로 교회를 재편하기를 열망하신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으라는 말씀을 빙자한 소위 새 부대론이다.

다른 하나는 이 운동이 지향하는 신앙 내용, 곧 가르침인데, 그것은 세속적 부, 건강, 행복, 그리고 성공을 지향하는 소위 번영신학이라는 것이다.   이 운동이 성공하면 현재 대부분의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교단체제는 무너지고 신사도 중심의 중앙집권적 거대교회 체제로 교회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 경우 결과적으로 나타날 교회의 형태는 로마교회를 벤치마킹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상당수 대형교회는 신사도운동이 목표로 하는 교회체제에 이미 도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운동이 성공했을 때 나타나는 또 하나의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현저하게 후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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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하면 신사도운동은, 첫째, 전통적인 목회자 중심의 교회체제를 무너뜨리고 신사도 중심의 중앙집권적 권위주의체제를 추구하며, 둘째, 전통적이고 성경적인 복음의 진리, 곧 십자가의 도 대신에 이 세상적 가치관과 철학을 추구한다.   그 결과 기독교는 세상적인 종교, 세속적 철학으로 변모되고 말 것이니, 이것을 어찌 이단적 운동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4. 결론

이단에는 그 이론과 행태에 있어서 수준이 낮고 유치하여 이단성이 쉽게 드러나는 집단도 있고(신천지교, 하나님의교회, 통일교 등), 그 이론이 정교할뿐더러 실천성에 있어서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력이 있어서 그 이단성을 쉽게 분별하기 힘든 사상 내지 운동도 있다.

둘 중에서 교회에 더 파괴적인 것은 단연 후자라고 할 수 있다. 후자 중에서 현재 우리나라 교회에 파고들어 암약하고 있는 사상으로서는 펠라기우스주의, 로마가톨릭주의,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신사도운동을 들 수 있다.

이 네 가지는 각각 분리된 것이 아니고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성경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상을 전개한다는 점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  신천지교나 하나님의교회처럼 드러나게 반교회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집단들에 대해서 강력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실상 더 위험한 후자, 곧 교회 안에 암약하고 있는 이단적 사상과 운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경계심을 갖지 않고 그저 간과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비분강개했던 사도 바울이 생각난다.

교회 안에 암약하고 있는 이런 이단적인 사상과 움직임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가 감당해야 할, 이 시대 교회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교회는 이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2)

 

- 정동섭 목사(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


8. 어떤 사람이 이단에 미혹되는가?


부모와의 갈등이 많았던 사람.

역기능가정에서 성장한 성인아이들, 부모와의 관계가 만성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끼고 불만족했던 사람은 사이비종교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원가정에서 소속감을 경험하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이 사춘기와 청년기에 이단에 빠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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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쉬(Lasch, 1977)권위를 상징하는 사람이 없는 가정이 방치된 가운데서 성장한 젊은이들을 미혹하는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나 집단, 또는 이단을 위한 옥토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이단집단에 빠진 젊은이들 대부분이 방치된 가정 출신이라는 것이 연구결과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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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이 불행한 부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중년부인들, 아내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남편들도 이단에 미혹되기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단에서 표방하는 특정한 이념적 선전 때문이라기 보다는 수용의 욕구, 친밀공동체, 인정받고 싶은 욕구, 소속감의 욕구, 방향과 목적의 필요 때문에 이단집단에 끌린다(Enroth, 1988). 


위기에 직면한 정상인.

집단에 들어가기 전에 삶의 어려움으로 인해 심리적 고통이 컸던 사람이 이단에 미혹되기 쉽다. 역기능적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 항상 이단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 -->  정상적인 가정출신도 이단에 넘어가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여러 연구결과는 많은 이들이 이단에 가입할 당시 실직이나 이혼과 같은 개인적인 위기의 와중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불행하고 우울했으며 혼돈되어 있었고 방향감각을 잃고 있었다


정통교회에서 시험받은 그리스도인.

성경말씀을 배우기에 갈급한 사람이나, 교회지도자에게 상처받은 사람, 율법과 은혜의 차이를 분별치 못하는 사람, 사람의 행위를 보고 실족한 사람, 학벌이 낮아 공부하지 못한 사람 등이 이단에 끌리기 쉽다.

 이단은 보통 두 가지 방법으로 포교활동을 벌인다.

신학적으로 교리적 혼란을 조장함으로서 전도를 시도하고, 심리적으로 개인이 감지하고 있는 어려움이나 필요(욕구)를 악용함으로 포교한다(Jim Roche).

) -->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이단들에 대해 다음은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측, 통합측, 합신측)와 기독교성결교회, 또는 한국교회연합 등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집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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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첫째, 외국에서 들어온 단체가 있고,

둘째,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단들이 있다.

셋째, 위 단체들에서 영향을 받아 생겨난 2세대 단체들이 있다.

넷째, 기독교와 관계 없이 생겨난 신흥종교들이 있다.

외국에서 들어온 이단.

여호와의 증인(Charles Russell), 몰몬교(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Joseph Smith),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Ellen G. White), 지방교회(Watchman Nee, Witness Lee: 한국복음서원), 전능신교(동방번개파: 전능하신 하나님교회: 趙維山: 재림주 양상빈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단들.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선명 + 한학자), 장재형(장다윗), 기독교복음선교회(국제크리스천연합: 정명석), 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천부교(박태선), 영생교(승리제단; 조희성);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무료성경신학원: 이만희). 

안식교에서 파생된 이단들.

안상홍증인회 (세계복음선교협회: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 장길자). 엘리아복음선교원(현 한농복구회 박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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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적 세대주의 형제교회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이단들.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의 유병언, 권신찬/ 대한예수교침례회의 이요한, 기쁜소식선교회의 박옥수는 모두 Dick YorkKaas Glas의 제자들), 서울중앙침례교회(서달석), 한우리교회(오성삼), 말씀보존학회(이송오)

ⓒ 베뢰아 신비주의 계통의 이단들.

남침례회 성락교회파(김기동), 레마복음선교회(이명범), 예수중심교회(이초석), 다락방전도운동(예수전도협회: 류광수), 인터콥(최바울), 만민중앙성결교회(이재록), 신옥주(은혜로교회), 신사도개혁운동(Peter Wagner), 아이합(IHOP: 마이클 비클), 큰믿음교회(변승우)

토속종교를 기반으로 생겨난 사이비종교들.

대순진리회, 증산도(강증산). 단학선원(단군숭배: 기철학, 뇌호흡, 홍익문화운동협회: 이승헌), 마음수련원(우희호)

9. 신흥종교 운동의 특징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종교 연구소는 새로운 미국 서부 지역 종교 운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 적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신흥종교 운동을 발생과정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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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 운동은 종교지도자(prophet)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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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지도자는 기존의 종교적 가르침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가르침(promise)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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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리뿐만 아니라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구체적 계획(plan)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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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종교운동은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로 인해 그 성패의 가능성(possibility)이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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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종교운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전하게 그들의 종교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장소(place)가 필요하다.

이러한 분석(5Ps)은 기독교계 신흥 종교 운동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좋은 분석 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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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통일교와 신천지,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와 같은 한국 이단들은

첫째, 자신들의 지도자가 바로 재림 그리스도 혹은 보혜사 성령인 것을 주장하고,

둘째, 자신들의 계시와 경전을 통해 불완전한 성서의 가르침이 완성될 수 있으며,

셋째, 오직 자신들에게 속한 144,000명만이 구원받고,

넷째, 자신들이 영향력을 갖는 지상천국이 건설되며,

다섯째, 성경에서 말하는 동방이 바로 한국이라는 대동소이한 주장을 하고 있다.

10. 이단의 공통점: 이단은 어떤 열매를 보이는가?


일찍이 사도 베드로는 순교를 앞두고 경고하였다.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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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7: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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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거짓된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며 마땅치 아니한 교리를 가르쳐 개인의 인격을 파괴하고 가정을 무너뜨리며 교회를 분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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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사이비종교와 기독교 이단은 재산을 갈취하고, 여신도를 겁탈하며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 신도를 살해하는 행위, 교주를 신격화하는 행위, 군복무를 거부하는 행위, 수혈을 거부하는 행위, 시한부 종말론을 통해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행위 등 비윤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반사회적인 행위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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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열매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단종파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특징은 여러 가지다.

이단과 사이비기독교의 발생모체는 언제나 기독교회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요일 2:19).

박태선은 정통교회의 장로였으며, 유병언은 대구 문화장로교회 출신이었다. 이만희는 박태선의 신앙촌과 유재열의 장막성전 출신이다. 대순진리회나 증산도, 단학선원은 기독교와 관계없이 생겨난 신흥종교, 사이비종교라 할 수 있다.

이단자들은 그들의 교주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거나 자신을 신격화한다.

이단의 지도자는 신비롭고 마술적인 요소를 가진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 대중에게 매력과 호소력을 제공한다.


재림예수, 감람나무, 심판주, 동방의 의인, 살아있는 성령, 보혜사, 어머니 하나님, 참 부모, 재림주, 만왕의 왕, 평강의 왕이라고 신격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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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예수님보다는 살아있는 지도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신천지는 이만희를 보혜사 성령으로 믿고, 통일교는 문선명을, JMS는 정명석을 재림 예수로 믿고 있다.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는 하나의 우상은 될 수 있지만, 초월자 하나님은 되지 못한다.

이단종파의 창시자나 교주는 신적인 계시,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들이 받았다고 하는 직통계시에는 일관성이 없다.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벧후 2: 17). 그들은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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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으며, 성경은 완성되었다. 우리에게 더 이상의 계시와 영감을 주신다고 말씀하지 않았다. 우리는 주어진 계시를 성령의 조명으로 깨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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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우선 자신의 교리를 새로 발견된 진리라고 주장한다. 구원과 교회와 종말에 대해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다고 주장한다. 세계의 종말을 강조하면서, 세계 종말에 대한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단들은 성경 외에 그들의 정경(正經)을 따로 갖고 있다.

통일교에는 원리강론 [성약서], 몰몬교에는 [몰몬경], 여호와의 증인에는 [새 세계 번역성경], 에리야복음선교원의 [천국사람들], 인식교의 [교리문답집], 크리스천 싸이언스의 [과학과 건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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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특정한 정경이 없으면 교주의 설교집이나 저서가 곧 성경의 권위와 동일하게 여겨지거나 성경 위에 군림하는 경향이 있다.

이단자들은 성경을 우화적으로 제멋대로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다.

루터는 성경의 가장 정확한 해석은 성경이라 주장한 적이 있다. 이단은 전통적인 성경해석과 교리를 부정한다. 정통교회는 성경을 역사적, 신학적, 문법적 배경과 원리에 비추어 해석하지만, 이단들은 대부분 풍유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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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와 안상홍증인회, 구원파는 비유풀이로 악명이 높다. 성경은 무식한 자들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여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벧후 3:16)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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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이단들은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비슷한 주장을 한다.

교주 자신이 재림 예수와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거나, 자기들의 계시와 경전은 불완전한 성서의 완성이라고 주장하거나, 오직 144,000명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거나(이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상징적 숫자이나 이단은 이 숫자만은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 한국 땅에 지상천국을 이룬다고 하며, 신약에 나오는 동방’(16:12)은 한국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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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비상식적이고 비성서적인 이단들의 유혹에 고학력자나 전문 계층의 신도들도 미혹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단에 빠지는 것은 지적 수준이나 상식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이고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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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은 성경 전체를 사용하지 않고 성경의 몇 구절만을 문맥과 관계없이 외워서 사용하기 때문에 신도들에게 영적인 편식을 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정통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다 균형있게 전한다(2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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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단교주들은 대개 초, 중등학교 출신이 많으며 신학적으로 무식할 뿐 아니라, 성품적으로 자기도취적인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많다. 이단들은 거의가 과대망상, 피해망상 환자이며, 영웅주의, 인기주의에 심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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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배후로 지목된 유병언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단 교주들은 반사회적인 성격장애자들로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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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상의 지능을 갖고 있으며 겉으로는 상당히 매력적이다(범죄심리학자들은 이들을 '양복 입은 뱀'이라고 표현한다).

망상이나 비논리적 사고를 나타내지 않으며 정상인처럼 행동한다.

불안이나 신경증적 증상은 보이지 않는다.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간에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진실성이 없고 후회할 줄 모르고 수치심이 없다.

충동적으로 보이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한다.

병적인 이기주의를 보이고 진실한 사랑을 하지 못한다.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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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제임스 콜만(James Coleman)은 이단자들이 고등 사기꾼으로 대단한 지능과 사교적 매력으로 사랑을 속이기 위해 복잡하고 정교한 계획을 세워 이행하기도 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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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자아도취적으로 과장된 자아상을 갖고 있는 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쳐 영적으로 으뜸 되는 위치에 승격시켰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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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들은 자신이 이끌고 있는 종파의 교리나 행동양식을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속한 이단종파의 전 영역에 걸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단자들은 자기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가르친다.

이단자들은 자기들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마지막 환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교회 역사를 부인하며 교주를 신격화하고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하거나 자기들만의 구원공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축복권과 저주권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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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자기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독선적 주장을 한다. 이단들은 자기들의 공동체에 가입하는 자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설득한다. 따라서 이들은 폐쇄적 배타성과 극단적인 선민의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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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이중적 언어체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구원, 중생(거듭남) 종교, 율법, 기도, 교제, 예배, 재림 등 성경적 용어를 기존교회와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그들은 마치 암호처럼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은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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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순수성을 강요한다. 그래서 그들우리들이란 공식을 만들고, ‘그들은 악이고, 죄인들 혹은 저주받은 사람들이고, ‘우리들은 순수하며 의로운,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회와 세상을 불결하고 죄악된 곳으로 단정하고, 자신들의 집단만이 순수하기 때문에 그 집단의 교훈이나 규율에 절대 몰입될 것을 강요한다.

이단자들은 특수 분야에 호감을 살 수 있는 매력적 사업을 내세운다.

예를 들어, 안식교에서는 토요일을 인식일로 지키고 삼육식품, 외국어교육, 의료사업, 교육사업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수혈거부, 병역거부를 주장한다. 안상홍증인회에서는 봉사활동과 유월절을 지킬 것을, 몰몬교에서는 술, 담배, 커피, 마약의 금지를, 통일교에서는 순결운동과 합동결혼식을, 구원파에서는 자연보호운동(녹색회), 환경친화적 유기농을 통한 집단생활을 선전한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는 문화아카데미를 통해 여행, 운동, 취미 동아리로 청소년, 대학생들을 미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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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엔로드(Enroth)는 말한다. 이들 신흥종교집단에서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고 약속한다. 이단은 단순하고 흑백이 분명한 해답을 제시한다. 집단의 구조는 그들의 불안정감과 고독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단에는 절대적인 확신과 확실함을 나타내는 지도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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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각 개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인정받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 따라서 가정에서 정체감을 확립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이단에서 자아정체감을 확인하게 된다.

육적가정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젊은이들은 영적가정에서 소속감을 확인하며 이단은 신도에게 대체가정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단자들은 한결 같이 현실 기존교회를 비난한다.

그들은 현실교회에서 나간 자들이 때문에 기존교회의 약점을 찾아내 비난한다. 이단자들은 전통을 무시하며 사도신경에 동의하지 않으며, 어떤 이단은 주기도와 축도를 하면 이단이라고 기존교회를 비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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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외부 사회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폐쇄적인 경향이 있다. 즉 반사회적이고 문화 거부적이다. 그 집단만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집단을 이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단의 지도자들은 추종자들이 가족이나 친지 등의 외부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도록 유도한다. , 공간적이며 심리적인 격리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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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은 기존교회에서 이단, 사이비로 규정하면 잘못된 교리를 수정하려 하지 않고 금력, 인맥, 권력 등을 이용하여 소송을 제기하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잘못을 깨닫고 탈퇴하는 자들에게는 위협과 협박 등 폭력을 행사하며 반항하면 행동대원으로 살인 제거 후 암매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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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자들은 대부분 기성교인들만 찾아다니며 유혹한다.

불신자들에게 전도하기보다 교패가 붙어있는 집을 우선적으로 찾아다니며 미혹한다.

종교 실태조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성경공부를 시켜준다고 접근한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의 대다수는 기성교회 성도들이다. 이단은 불신자를 미혹하기보다 정통교인들을 미혹한다.

이단자들은 세상 종말이 곧 임한다고 주장한다.

절박한 위기의식을 조장한다. 시한부 또는 조건부 종말론을 외치며 자칭 재림예수 혹은 마지막 선지자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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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대개 극단적 세대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아 임박한 종말을 주장하며 자기들의 공동체에 가담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미혹한다. 종말론을 강조하는 이단들은 한결 같이 666이나 144천 등 숫자를 자기들의 편의대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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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신천지 신도 144,000명이 모이면 새 하늘과 새 땅이 경기도 과천에서 시작되며 신천지 신도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호와의 증인은 말세에 아마겟돈 핵전쟁이 일어나면 개신교 교인과 국가들은 전멸하고 여호와의 증인144,000명만이 살아남게 된다고 주장한다.


한편 여교주 하나님 어머니장길자가 주도하고 있는 안상홍증인회 재림주 안상홍이 약속의 땅 동방 땅 끝’  한국에 재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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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이 땅에 이뤄지는 가시적인 지상천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개 폐쇄지향적이고, 은폐적이며, 비윤리적이고, 도덕적 타락을 야기한다. 그래서 이단에는 대외적인 선전교리가 있고, 자기들만 믿는 비밀교리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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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외형적으로는 거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윤리적인 결함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율법폐기론적이고 반율법적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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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거짓 선지자들은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 행하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하니하고(벧후 2:10, 14)라고 증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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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사건과 영생교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단의 폐해는 납치, 감금, 구타, 세뇌, 가출유도, 가족과의 절연, 이혼, 신용불량자 양산, 사회생활의 거부, 재산갈취, 학업중단, 자퇴, 사직, 혼음이나 강간, 자살 같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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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사도는 이단 교주들에게 탐심호색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였다(벧후 2:2-3). 세상 법정에서는 이단교주를 종교를 빙자해 상습적으로 사기를 치는 사기꾼으로 정죄하고 있으며, 교주들의 문란한 사생활은 문선명, 박태선, 정명석, 유병언 등의 사례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단집단은 예나 지금이나 마땅치 않은 것을 가르쳐가정들을 엎드러치고 있다(1:11).

교주를 참 부모라고 가르치기도 하고, 교회중심으로 생활하도록 하여, 가출하게도 하고 이혼을 조장하기도 하여 가정을 파괴한다. 신천지, 안상홍증인회, 구원파, 정명석 집단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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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이 이단에 빠지면 부모를 거역하고 학생인 경우 학업을 중단, 포기하거나 가출하기도 하고 페인이 되기도 한다. 신혼부부 같은 단란한 가정일지라도 이단에 빠지면 토지문서나, 가옥 문서를 교주에게 바치면서 상을 받을 줄 알고 기뻐하기도 하지만 급기야 이혼까지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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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숨은 목적은 첫째가 탐심으로 경건을 돈벌이의 재료로 삼는 것이고, 두 번째가 호색 즉 성적 착취이며, 세 번째가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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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양과 같아서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직업과 관계없이 이단에 미혹되기가 쉽다. 얼마나 많은 교수와 교사, 의사, 검사, 판사, 변호사, 정치인이 이단에 빠져 교주에게 충성하고 있는가!

11. 이단이 끼치는 폐해는 무엇인가?


이단은

첫째,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가르침으로 거짓된 구원의 확신을 주어 영육을 파괴한다.


둘째, 부부 중 한 사람이 또는 자녀가 이단에 빠지면 가족 간에 갈등이 극심해지고 많은 경우 이혼으로 고통당하게 된다.

셋째, 여러 가지 명목으로 재산을 바치게 되어 이단에 빠진 사람은 대개 가산을 탕진하게 된다.

넷째, 신천지의 추수군 또는 산 옮기기 전략에서 보듯이 이단은 교회로 위장 침투해 교회공동체를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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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통일교에 빠졌다고 14년만에 탈출한 스티브 하싼(Steven Hassan)은 비상식적인 사이비종교에 사람들이 미혹당하는 이유가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마인드 컨트롤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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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행동통제(behavior control)를 시도한다.

사이비종교는 신도들의 헌신을 강요하며 일상생활, 즉 먹고, 입고, 자고, 일라는 것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통제한다. 자유 시간은 철저하게 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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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통제(thought control)를 시도한다.

사이비종교는 신도들의 사상을 철저하게 개조하며, 자신들의 교리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강요하며, 다른 개인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 --> 


감정통제(emotional control)를 시도한다.

사이비종교는 신도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죄의식과 위기감을 주입한다. 신도들은 자기들이 느끼는 죄의식과 위기감이 통제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사이비종교 지도자는 과거의 죄를 추궁하고, 신도들이 죄의식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자가 신도들의 결점을 들어 비난하더라도 신도들은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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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정보통제(information control)를 시도한다.

정보는 사람의 정신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연료와 같다. 사이비종교는 신도들에 대한 정보통제를 통해서 비판의식을 말살시킨다.

이를 통해 사이비종교에 빠진 사람들은 사이비종교와 지도자에 대한 비판의식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사이비종교에 점점 깊숙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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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과 사이비기독교는 거짓의 아버지 사단의 조종을 받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에게는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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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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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적이 있다.


신약교회의 지도자가 수행해야 할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강해해주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릇된 가르침이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목회경험을 통하여 본인이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진리를 긍정적으로뿐 아니라 부정적인 면에서도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언제나 이단과 사교집단에 끌려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리 경고를 받고 미리 무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위험이다. 우리에게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구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교회는 이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3)

 

- 정동섭 목사(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


 12. 이단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사라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구원’(salvation)이다. 그러다보니 구원에 관한 여러 가지 잘못된 견해가 있었다. 초대교회 이단도, 그리고 한국의 이단들도 구원관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이단의 구원론은 유기적으로 삼위일체, 기독론과 연결되어 그 이단성을 드러낸다. 이단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교리는 기독론과 성령론, 그리고 종말론이다.

 

한국교회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성격의 이단이 있다.

첫째는 그 집단의 교주를 신격화하는 교주 우상주의집단이다.

교주 우상주의는 교주를 하나님이나 재림예수, 또는 보혜사 등으로 믿는다. 문선명의 통일교, 박태선의 천부교, 이만희의 신천지, 안상홍의 하나님의 교회(장길자), 조희성의 영생교가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둘째는 역사적, 보편적 교회와 달리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교리적 이단이다.

교리적 이단은 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한 칼케돈 신조나 콘스탄티노플 신조 등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와 다른 해석을 갖고 있는 이단들을 일컫는 것이다.

류광수의 다락방, 박윤식의 평강제일교회, 유병언, 박옥수, 이요한의 구원파, 김기동의 성락교회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하겠다.    

현대의 이단은 대개 네 가지 유형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단들은 교회역사상에 나타났던 이단이 새로운 가면을 쓰고 등장한 것뿐이다. 목회자는 양들에게 이를 주지시켜 양들을 흉악한 이리의 횡포로부터 보호해줄 책임이 있다.


1) 율법주의(legalism) 이단

율법을 지켜야만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만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함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슈가 되었다(15:1-5).

151,5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율법주의 이단을 경계하라고 편지하면서, 그들을 ’, ‘할례파라고 불렀다.

32-3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교회 역사 가운데 에비온파가 할례와 안식일을 지켰다. 바울을 율법주의 이단자라 하였다. 오늘날의 율법주의 이단들도 같은 주장을 한다.


성경에서는 율법주의 이단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 4:3).

 

안식교안식일을 지켜야, 채식을 해야 구원받는다라고 주장한다.

안식교 교리에 의하면 큰 구원과 영원한 구원이 있는데, 큰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받지만, 영원한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 받는 것인데 조사심판을 통과해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말세의 재앙과 전쟁 등 환란을 피해서 구원받으려면) 안상홍증인회는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몰몬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구원받는 것을 부인하고 모든 죄를 사함받는 길은 오직 몰몬 계명을 지키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침례의식을 행해야 하며, 각종 의식과 율법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천지나 안상홍증인회, 여호와의 증인, 정명석 집단도 결국 자기들이 제시하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율법주의 이단이라 할 수 있다. 이단들은 특히 절기와 때, 그리고 음식물에 대하여 율법적이다.

 

이단은 율법주의적 틀로 신도들의 세부적인 신앙생활을 통제하고 지배한다. 일반적으로 사이비종교들은 옷의 모양, 머리카락의 길이, 개인적인 몸치장의 형태를 규정하고 있다. 신도들의 외모에 관해 구체적으로 규정해 율법적으로 통제하기도 한다.

2) 반율법주의(도덕폐기론: antinominianism)


율법주의와 정반대 주장을 한다. 도덕폐기론, 또는 반율법주의라고 부른다.

은혜만을 강조하고 행함을 무시하는 것이다. 바른 것을 믿고 바른 것을 말하기만 하면 무슨 짓을 해도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구원은 영이 받는 것이고, 육은 악하기 때문에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육체로 행하는 모든 것은 구원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면 율법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가르친다(1991년 오대양 자수범들은 자기들은 영혼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육신으로 사람을 죽여 암매장했어도 천국 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유병언, 박옥수, 이요한은 믿음의 한 가지 기능인 깨달음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일단 죄 사함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으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즉 반복적 회개를 하지 않아도 구원받는 것처럼 가르친다.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2:4-6)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 15-16)

 

니골라당은 영의 구원만을 주장하였다. 반면 육체로 어떠한 삶을 살아도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가르쳤다.

 

오늘날에도 구원파는 죄와 범죄는 다른 것이라 주장하면서, (원죄)만 용서받으면, 범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거나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주기도를 하지 않고 사도신경을 부정한다. 회개합니다,” “죄 지은 것을 참회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말한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죄사함을 깨달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칭의를 위한 단회적 회개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 회개를 구분하지 않는다.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죄를 지어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하여 도덕폐기론적 입장을 취함으로 구원파에 속한 사람들은 폭행, 거짓말, 속임수를 보고도 양심의 가책마저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 버린다.


오대양 사건, 또별 사기 사건에 대해서도 자기들은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라 할 것이다. 율법폐기론 또는 율법무용론은 어느 시대에나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단이다.

3) 영지주의(gnosticism) 이단

영지주의자들은 영지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다. 영적인 지식을 알고, 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을 때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이단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고난 당하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것은 사람의 눈에 고난당한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가현설). 예수님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예수님의 인성을 무시한다.

  대부분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자들이다. 이들은 물질과 육체는 본래 악하고 영혼만은 순결하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삼분설을 따르는 이들 가운데 영지주의자들이 많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성육신 예수와 그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이 1:7)라고 말하며 영지주의자들의 활동을 경계하고 있다.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1-3).

 

오늘날에도 영지주의 이단이 있다. 자기들만 갖고 있는 영적 비밀을 깨달아야 구원받는다고 유혹하는 신천지가 대표적인 경우다.

  교주 이만희가 자칭 보혜사이기 때문에 성경의 비밀스러운 영적 지식을 알려주고 풀어줄 수 있다고 한다.

신천지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만 믿을 수 있고, 믿은 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지신행). 성경의 비유와 계시록의 감추어진 비밀스러운 지식을 아는 사람만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혜사는 진리의 영으로서 성령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단 교주들은 자신을 보혜사, 동방의 감람나무, 이슬성신, 약속된 목자, 사도 요한격 목자, 즉 이긴 자, 만왕의 왕, 만유의 대주재, 총회장 등으로 신격화한다.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으면 구원받는다고 미혹하는 박옥수 집단도 대표적인 영지주의 이단이라 할 것이다.

 

은혜로교회의 신옥주도 신천지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신천지식 비유풀이를 하며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나누어 예수는 인성이요, 그리스도는 신성이라는 왜곡된 기독론을 전파한다.

지금까지 130년 한국기독교역사를 부정하고 모든 목회자들이 마귀에게 속아 왔다고 주장한다.

신옥주 목사를 때를 따라 양식을 먹이는 자라며 우상화를 꾀하고 있다.

4) 신비주의(mysticism) 이단

신비주의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신학은 인식적이고 지적인데 반해, 신비주의는 기독교 신앙의 관계적, 영적, 경험적 단면을 강조하는 접근방식이다(Alister McGrath).

  하님과의 연합으로부터 파생되는 순수함이나 행복은 성경말씀이나 은혜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경험을 통해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신비주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객관적인 지식이나 이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과 하나님의 영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에, 지적인 것이나 이성적인 것이나 이해하려는 것 보다는 느낌에 중점을 둔다(Martyn Lloyd-Jones).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알기 위해서 성경보다는 직접적인 체험을 우선순위에 둔다. 하나님에 대한 정통신앙의 가르침보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기 원한다.

 물론 신비를 부정하면 이성주의자가 되고, 신비만 인정하고 신비와 기적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 신비주의자가 된다  

한국교회에 이단이 많은 결정적 이유는 바로 한국인의 신비주의성 때문이다. 즉 기적을 자연보다 더 높이 평가하고 기적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형태를 신비주의라고 한다.

 

많은 교주들은 투시, 예언, 안찰, 안수, 방언, 통역, 진동, 축사, 환상, 치병, 몽시, 입신 등의 신비능력을 자랑한다. 일부 신비주의 이단은 한국인의 의존심성을 교묘히 이용하여 금품을 갈취하며 신앙을 오도하고 있다.

  신비주의 이단은 이해보다는 성령의 느낌을 더 강조한다. 교회 역사 가운데 몬타누스는 자신이 보혜사의 대언자라며, 보혜사의 강림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의미한다고 가르쳤으며, 입신과 초자연적인 계시를 강조하였다.

  신비주의자들은 성경보다는 직접적인 체험에 우선순위를 둔다. 사이비종교 주변에는 샤머니즘, 정감록, 신령숭배, 풍수신앙, 주술, 부적 등 무속적인 복합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령의 은사, 환상, 꿈 등을 통해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체험하는 것을 원한다. 지역귀신, 땅 밟기에서 말하는 지역을 묶고 있는 영이 있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천부교의 박태선, 영생교회의 조희성, 만민중앙교회의 이재록, 귀신파계열의 이단들(김기동, 이명범, 류광수 등), 큰믿음교회의 변승우와 인터콥과 같이 신사도운동에 영향을 받는 단체들이 신비주의 이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영이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을 알고 다른 영들을 분별하여야 한다.

  이단은 열광적 신비체험을 강조하며 신도들의 호기심과 열정적인 몰입을 유도한다. 허황된 이적을 추구하게 하며 황홀경을 갖게 한다.

 

예수께서는 예고하셨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24:5)

 

사도 바울 당시에도 그랬듯이 오늘 날도 이단들은 항상 스스로를 그리스도와 사도, 재림예수로 위장하고 있지만(고후 11:13-15), 그들은 다른 예수를 전하고, ‘다른 복음을 전파하며, ‘다른 영을 받게 하여(고후 11:4) 사람들로 하여금 멸망의 길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13. 우리는 이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4: 13-14).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시오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100:3).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목자로 그리고 사람을 양에다 비유할 때가 많다.

  왜 사람을 개나 돼지에 비유하지 않고 양에다 비유할까?

양은 다른 동물에 비해 사람을 가장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양은 방향감각이 없고 영적 분별력이 없다.

그래서 성경에 양이 언급될 때는 언제나 우리는 양과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다고 한다. 그래서 양에게는 인도하는 목자가 필요하고 보호해줄 울타리가 필요하다.

 

목회자의 두 가지 사명은 먼저 목회자는 양을 돌보는 목자다.

목자는 첫째로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야 한다.

둘째로 목자는 흉악한 이리와 같은 맹수로부터 양떼를 지켜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단으로부터 양떼를 보호하고 지키는데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또한 대부분의 성도는 이단에 대해 언급하거나 비판하는 설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목회자는 강하고 담대하게 양을 지키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성령이 그를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기 때문이다(20:28).

  우리는 먼저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에 거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교회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목회자들이 제대로 가르치고 영적으로 바른 자세로 교인들을 양육할 때 이단의 속임수와 사특한 미혹에 대처하고 성도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목회자들은 이단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효과적인 이단대처를 위해서는 공신력 있는 관련 정보의 수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단 사이비에 대한 정보는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세이연)<교회와 신앙>, <현대종교>,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기독교포털뉴스>, <바른 믿음>와 같은 교단 및 공신력 있는 이단연구단체들을 통해 제공받아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이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자기에게 맡겨진 양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정통교회 목회자들은 이단과 사이비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들의 주장과 정통교회와의 차이점, 그들의 미혹수법과 특징, 그들의 정체에 대해 서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이단들에 대해 평소에 교인들에게 예방차원에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단과 사이비에 대처하려면, 먼저 철저한 성경공부와 교리 공부를 해서 성도들로 하여금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른 교훈’(sound doctrine)을 알지 못하고 다른 교훈’(false doctrine)을 분별할 수 없다. 진짜를 알면 가짜를 쉽게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공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하며, 목회자 허락 없이 다른 곳에서 가서 성경을 배우지 못하도록 조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통 교회 목회자들은 교인들을 올바로 교육하여 성도들이 진리위에 설 수 있도록 교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 사도적인 가르침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17).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켜야 한다(1:20이하).

바울이나 요한, 베드로는 이단의 위험에 대처하는 법을 미리 알려주기 위하여 대부분의 서신을 기록했다. 믿음으로 자기를 건축하고, 성령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긍휼을 기다려야 한다.”

   

목회자들은 이단에 대처하기 위해 자신이 건전하고 올바른 영성을 다져야 한다.

신천지나 안증회, 구원파에 빠지는 부류 중에는 사회적, 가정적, 신앙적으로 상처를 입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정통교회가 항상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 교회와 목회자의 비리로 인해 갈등이나 분규를 겪는 교회들이 이단침투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담임자 세습, 예배당 신축이나 이전시 생기는 헌금문제나 재정비리 그리고 목회자의 이성문제, 목회자와 평신도 간의 갈등 때문에 성도가 교회를 이탈하여 이단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13:7).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인상이 나빠지고 있다. 그리하여 종교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일이나 종교단체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이원규, 2000).

기존 정통 개신교회는 기복신앙, 물질주의, 반지성주의, 배타주의,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교회는 돌봄과 나눔의 공동체, 관심과 사랑이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가족이 이단에 빠져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른 믿음 안에 있는 가족이 무조건적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단피해자들을 위한 가족들의 쉼 없는 기도와 친절, 무조건적 사랑만이 이들의 회복을 도와줄 수 있다.

   

목회자들은 정확한 이단들에 대한 정보, 전문성 확보와 알림에 노력해야 한다.

이단전문가들을 초청해 성도들에게 예방교육을 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단 사이비는 성경과 전통적 기독교 교리를 기준으로 분별할 수 있다.

  신학적, 교리적 분별에 의해 이단피해자를 선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단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단 사이비 단체들의 물적인 토대를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실천이다.

   

목회자들은 모든 성도가 반드시 소그룹(목장, 또는 구역)에 소속되어 교제 안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양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하다. 대예배에만 참석하는 성도는 이단의 미혹으로부터 보호받기가 어렵다. 목자는 양을 사악한 이리의 위장침투로부터 보호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

   


교인들이 바른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한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4:12).

우리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음(영접)으로 구원을 받는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성도, 구원에 대한 감격이 살아있는 성도는 이단에 빠지지 않는다. 누가 이단에 미혹되는가? 구원의 확신이 없고 교회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사람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즉 그를 구주와 주님으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살아 있는 관계를 맺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M.T. Rankin).

   

평소에 성도들이 교회 밖의 성경공부에 참여할 때는 목자의 허락을 받도록 예방교육을 해야 한다.

양은 목자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13:7).

 

요즈음 성경을 비유와 짝으로 보아야 한다며 비유풀이를 하는 곳 중에 이단이 많다.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절대로 부모님이나 목사님에게 말하지 말라는 비밀교육을 시키는 곳도 이단으로 보면 틀림없다. 복음은 부끄러운 게 아닌데 비밀교육을 시키는 것 자체가 수상하지 않은가!

 이단들은 다음 세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미록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음 세대는 한국교회의 미래이고 소망이다. 이들을 지켜내지 못하면 한국교회의 미래도 없다.

  이단들은 조기교육에 관심 있는 학부모와 자녀들을 미록하고 있으며, 인식교와 몰몬교, 구원파에서는 영어를 가르쳐준다고 접근한다.

통일교는 학부모를 특성화교육으로 유혹하고, 하나님의교회, 신천지, 통일교, 구원파 IYF, JMS 등 거의 모든 이단들이 사회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단들은 스마트한 디지털 세대에 맞춰 수준 높은 음악, 동영상, 만화들을 게시해 놓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미혹하며 교세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대학 캠퍼스 사역자들은 대학 캠퍼스를 이단들과의 전쟁터라고 부른다. 이단들은 특히 신입생들을 노린다. 한국교회는 이들 신입생들을 미혹하는 이단 사이비단체들에 대한 간략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적극적인 대학가 이단대처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단자들이 위장하여 만든 언론이나 이단을 옹호하는 기독교언론들을 경계해야 한다.

현재 한국교회에 힘 있는 초교파 언론들 대다수는 이단과 연루되어 있다. 이단 사이비 단체에서는 TV나 신문 등 언론을 이용하거나 소위 이단옹호자라고 하는 이단의 앞잡이들을 활용한다.

언론에서는 돈만 주면 광고를 해주기 때문에 그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각종 언론을 활용하거나 아예 신문을 만들어 선전도구로 이용하기도 한다.

 

<교회연합신문>, <크리스천 투데이> <크리스챤신문>, <세계복음화신문>, <기독교신문> <기독교초교파신문(올댓뉴스)> 등은 한국교회에 의해 이단옹호언론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단들은 [법과교회]와 같은 이단옹호언론에 많은 힘을 공급하고 있고, 저들은 이단 연구가 죽이기’, ‘이단 연구가 이단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단보다 회색분자들, 이단브로커, 이단옹호자들이 더 악하다고 할 수 있다.  

이단 사이비에 맞서는 이단 전문가를 비롯한 하나님의 선한 세력들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함께 연대하며 서로 돕고 신뢰해야 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은 2010년을 기점으로 박윤식 집단과 류광수 다락방, 김풍일을 이단에서 해제해주는 실수를 범하였고 이단전문가들을 이단옹호자로 규정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다. 적전 분열을 일으키는 것은 사단이 기뻐할 일이다.

  진리와 기름은 반드시 수면위로 뜨게 되어 있다. 정통진리를 대변하고 이단에 맞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지도자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악한 세력에 맞서야 한다.

   


공익을 대변하는 신문과 TV 그리고 인터넷매체들은 사이비성이 있는 종교집단들을 철저히 파해쳐 윤리적으로 정죄하고 비판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KBS, MBC, SBS, CBS, CTS, C 채널, 극동방송과 같은 매체들은 그 동안 가정을 파괴하거나 성을 헌납하게 하거나 헌금을 강요하는 집단들의 정체를 집중적으로 보도하여 선량한 국민들을 계도하는 일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해주었다.

  때로는 사이비집단을 폭로하기 보다는 호기심이나 흥미위주로 정통교단을 매도할 때도 있었다. 정통 교단의 언론매체들은 이단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고 각 교단이 연합해서 대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앞으로도 언론매체들은 폐쇄적 사교집단들의 행태를 미리 알려줌으로 사회적 폐해를 줄이는 일에 앞장 서야 할 것이다.

   


정부는 사이비종교집단의 교주를 처벌하고 규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현대국가에서는 종교적 사실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문제성종교집단의 교주에 의해 끔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들을 종교를 빙자한 사기범으로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사교집단의 특징은 항상 반문화적이고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 후 구원파의 행태에서 본 것처럼, 이단은 세상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치외법권적, 초법적인 집단인 것처럼 행동한다.

일단 폐쇄적이 되면 법도 미칠 수 없으므로 극단적인 범죄도 불사하고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폭이 좁아지면 집단자살과 같은 대형사고를 저지른다.

  따라서 모든 종교단체를 문체부 종무과에 종교법인으로 등록하게 하여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신천지, 안증회, 구원파, JMS 등은 신앙의 이름으로 반대자나 이탈자들에게 갖가지 폭력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성폭력이나 아동폭력에 대하여는 방지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종교적 학대’(spiritual abuse)로 인한 폭력에 대하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또 다른 대형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체계적 신학교육을 받지 않고 종교활동을 하는 무면허, 무자격목회자로 하여금 목회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사이비종교지도자 규제법 같은 것을 서둘러 제정하여야 할 것이다.

  정통교회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전방향 이단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고전 4:6).

 

목회자들은 사도 베드로가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호소한 것처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벧후 3:17)는 권면을 따라야 한다.

 

본인이 이단적 집단에 빠져있는 것을 자각하였을 경우에는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6:17)는 말씀에 순종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종교의 순기능적 역할이 절실히 요구되는 영적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이다. 목회자는 강해설교로 성도들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할 것이며, 교회는 개혁과 갱신을 계속하여 사람들에게 안정감(소속감), 사랑과 교제, 공동체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요한계시록에서 경고하는 말세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말세에는 네 가지 징조가 있다.

사람의 징조 미혹이다(24:4).

환란의 징조 난리이다(24:6).

자연의 징조 재난이다(24: 7-8).

종교적 징조 이단이다(24: 11, 23-24).

우리 모두는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을 준비를 갖춰야 한다.

 

기독교는 종말론적인 신앙이다. 개인적인 종말이 있고 우주적인 종말이 있다.

예수님은 여러 차례 다시 오신다고 언급하셨으나 재림의 날짜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24:36).

 

바울은 그날이 도적같이 임한다고 누차 말한다.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살전 5:1-2).

오히려 바울은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살후 2:2).

 

재림이 임박했으니 세상에서의 육체적 삶을 정리하고 오로지 찬송과 기도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는 가르침은 이단의 가르침이 분명하다.

재림이 가까웠으니 가정을 버리고, 이혼하고, 직장을 떠나고, 학업을 중단하고, 일체의 사회활동을 단절한다고는 것은 전적으로 비성경적인 것이다.

 

우리는 재림이 가까워진다는 핑계로 나태하고 게으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살전 4:11).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주를 맞아 영접하여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이단 교주들의 시한부 종말론에 미혹되어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해서는 안 된다. 때와 시기에 대해 성도들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 3:11-12). 매일 경건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1:20-21)

교회는 사도들이 전해준 바른 교훈을 사수하는 가운데 모든 성도들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도록(벧후 3:11-12)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