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글.

균형(balance, equilibrium)을 위한 공의의 회복과 성찰.

ORACLE[2030] 2013. 3. 13. 00:30

신앙에 있어서 균형(밸런스, 이퀄리브리엄)의 문제.

 

오래전 대학 선교단체 시절에 나이가 있는 형제가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고 다시 신입생으로 들어와서 제가 활동하던 선교단체에 기웃거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심각한 고뇌?를 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고, 항상 자신이 원하는 교회를 찾기 위해 갈등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같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이 형제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서면 세상 만사가 모두 질서가 잡히고 잘 될 것인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영적으로 일체가 되면 이 세상 살이가 모두 평안하고 질서정연해 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인생에 대해서!   교회 공동체를 찾고 있는 것에 대해서 항상 갈등중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답하였습니다.

 

그 때 저는 이미 군대를 제대한 후였고 그 형제는 나이가 저보다 많았기 때문에 더 존중해 주고 그랬었는데,

어떻게 보면 신앙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나..  다른 면으로 보면 지나치게 사변적인 면도 있어 보였습니다.

나중에 보니..  자신이 바라던 교회 공동체를 찾았다고 하던데..  그곳은 목사와 장로가 따로 없고!  평신도들이 돌아가면서 주일 설교를 하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려서 부터 신앙 생활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담임 목사와 장로들 간에 있었던 사건 사고들 때문에  기존 교회 공동체에는 전혀 매력을 못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뭐...  그 형제의 신앙관이 그렇고 성향이 그렇다면 인정을 해 줄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그 교회는 정통 교단으로 부터~  이단 혹은 문제가 있는 곳으로 여겨지던 곳이어서!  우려가 되기는 하였습니다.  그런 형태의 교회를 형제 교회? 내지 다른 식으로 불려지는 것 같던데..  저는 이단 감별사도 아니고!  그런 거짓 영분별에 동의하지도 않기에.. 더 나아가지는 않겠습니다.

 

1. 신앙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 형제를 보면서~  그 때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였지만,  참~ 신앙과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인 인성도 그렇고 사람을 대하는 예절이나 태도에 있어서도 모범생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형제가 자신과 하나님과의 1:1의 관계를 가장 중요시 하고 있었고!  이것을 회복하길 원하고 있다는 생각은 성숙한 신앙인의 태도였습니다.

불순종하고 죄짓는 것을 즐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폐기물 처분하듯~  내 팽개쳐 버리는 오늘날의 대부분의 신앙인의 태도와는 너무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형제가 왜?  하나님과 자신의 영적인 내밀한 관계의 문제를 외적인 교회 공동체를 찾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였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2. 영은 메시지에 반응합니다.

육은 죄악된 본성을 따라 나타나는 모든 것의 총체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육체의 죽음 혹은 휴거 때 부활체로의 변화가 있을 때까지 육의 본성에서 나오는 죄들과 싸울 수 밖에 없는 연약성을 내재한 자들입니다. 영이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여 혼과 육까지 거룩하게 거듭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전에도 여러번 썻듯이..  영이 한 번 거듭났다고 하여 우리의 구원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신앙인의 싸움은 육을 입었기 때문에 육에서 나오는 악한 죄악의 본성들과 악한 습성들과 싸우는 것이고!  혼적인 생각들과의 내전입니다.

저는 위에서 언급된 그 형제의 신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주는 유익과 중요성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혹은 그분과 영적으로 일치되면 모든 것이 평안함과 질서정연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과 주장에 대해서는 극히 제한적으로만 옳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소위 도닦는 식의 물아일체!  우주와 하나됨!  모든 것이 물 흐르듯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혹자들은 마음을 비운다!는 표현을 쓰던데.. 마음은 비워질 수 없는 성질을 가졌습니다.

영과 혼을 통칭하는 마음은 채워 넣어야 할 공백입니다.

 

그러면 그 형제를 비롯하여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는 우리들은 왜?  영적인 메시지!  깨어있는 목회자들의 메시지들을 갈급해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영과 혼이 진리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3차원의 것을 뛰어넘는 4차원 이상의 영적인 세계를 깨닫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토마스(도마)가 왜?  부활한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주님을 보아야만 믿겠다고 하였을까요?  그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고 만지고 확인하고 싶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소수의 선택된 선지자와 지도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과 메지지들이 백성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백성들은 그 메시지를 청종하였습니다.  비록 불순종과 죄악들로 심판을 당할 때도 있었지만 믿음의 백성들은 대를이어 그 메시지를 들었던 것입니다. 불량자들과 배역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조롱하였지만, 영적으로 조금만 깨어있는 사람들은 그 진리의 메시지!  자신들의 인생과 내세를 확정지을 심판주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듣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3. 예언, 꿈, 환상과 계시에 관한 것.

저는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인 성령의 감화를 통해 씌여진 것임을 100% 인정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선지서나 신약의 서신서를 비롯하여 예언서 등은 비록 인간의 손으로 씌여진 것이었지만, 그메시지를 준 당사자는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인 것입니다.

즉, 선지자든 예수님이 세우신 사도든! 예언, 꿈, 환상과 또 다른 계시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단 감별한다는 자들 중에는 성경이 완성된 현 시점에는 이런 신비한 것들이 폐해졌다고 주장을 하던데..  이들은  영적으로 보면 완전히 영과 혼이 인간이 만든 거짓 교리와 잡석들로 가리워진 황폐한 무덤과 같은 자들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종말의 심판의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활동하는 때에도 두 증인인 선지자들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메시지를 주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세워지는 영적인 실체진실을 알아야 겠습니다.  따라서 꿈과 환상과 예언을 통해서 주어지는 미래적인 메시지나 영적인 메시지가 개인적인 것인든.. 국가적인 것이든.. 민족적인 것이든..  분별하여 취할 것은 취해야 합니다.

 

@ 사람에 대한 꿈과 예언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도생활을 잘 하고 영적으로 고양이 되다보면.. 환상도 보고 천국 지옥을 보는 입신도 하고!  방언과 방언 통변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꿈과 환상과 예언들이 국가적인 것도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것도 자주 있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꿈과 예언들이 시간이 지나서 실현이 적지 않게 되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일례로 만나고 있는 지인에 대한 영적인 꿈에서!   그 사람이 복음을 대적할 것이며 심지어 악한 자의 형상으로 나타날 때!  혹은 여성들 같은 경우는 창녀나 성적으로 타락한 여자와 같은 형상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꿈들이 저에게도 적지 않게 나타나서~  복음을 전하려고 만나는 그 사람들을 만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혹은 더 이상 그 사람은 복음이 들어가지 않을 사람이기에~  패쓰하고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려고 나서야 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많이 있었습니다.

---  그렇다고 제가 기도생활을 잘하고 은사와 계시가 임하는 자라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이죠!

 

저는 이러한 문제를 이렇게 결론 지었습니다.

영적으로 보여진 그 사람의 상태가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실제로 현실 세계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확인하여 나가면서~  경험적으로 터득하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죄악 가운데 있는 한 영혼이 구원받고 천국 백성되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 사람을 지인으로 알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으로 보자면..  참고 인내하고 사랑으로 섬겨주면서 또 다른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즉, 현 상태에서의 그 사람의 영적인 실체를 분별은 하되!  그것으로 인해 영혼 구원에 대한 열심과 열정을 다른 사람으로 옮겨서는 안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만나지 말아야 할 자들이 있기는 하겠습니다.

 

@ 미래에 대한 예언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저는 제 인생의 크고 작은 부분에 대한 계시적인 꿈을 꾼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놀랍도록 성취되는 것도 보았지만.. 거의 100% 확신하고 있었던 것도 좌절되는 것을 경험하고는 꿈이나 예언이 미래에 대한 것 이었을 때에는 정말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실수가 크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부족한 저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언 사역자들과 선지자들에게도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언이 나중에 성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영분별한다는 자들의 동영상에서는 예언들이 빗나갔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다! 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 점에 대한 확고한 분별이 필요합니다.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던 한국 전쟁에 대한 예언이든, 대 재앙에 대한 예언이든, 휴거에 관련한 예언이든!  실제로 그 때가 되어서~  일어나 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었지만 영적인 세계는 인간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무수한 변수가 존재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변수란 육을 가진 갈등하는 존재로서의 사람, 악한 사탄 마귀의 세력의 활동, 성령님과 선한 천사들의 활동, 그리고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확정하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근본 의도입니다.

니느웨를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요나에게 임하였을 때!  이것을 회피하였던 요나의 고난과 결국 순종하여 가서 회개를 선포하자!  회개한 니느웨 백성들이 심판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과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그대로 실현된 것이 그렇습니다.

따라서 회개치 않는 한국 교회와 한국 전쟁에 대한 예언이 떨어졌다고 하면~  자포자기하고 어찌 되었던 전쟁은 일어날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므로 인간인 우리들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다!는 자세는 옳지 않은 어리석은 태도라는 것입니다.  그 때는 공의로운 심판과 자비로운 사랑 가운데 갈등하시는 하나님님의 근본 의도를 살펴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민족이 복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민족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말 처럼 쉬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매일 성경묵상하고 기도하고!  전도하러 다니고 하는 충성된 성도들만 하더라도~  삶과 내면 깊숙히 들어가보면 패역이 살아있고 해결되지 못한 죄악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직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죄를 사랑하고 패역을 도모하는 육의 본성으로 곤고한 마음을 쓰러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섭도록 배도하고 타락하는 한국 교회와 유명 목회자들의 모습들을 통해서 그 심판의 길을 돌이키지 못하는 우리들의 죄성을 직면하고~  마음을 쓰러내리고 하나님께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저들의 죄악이 바로 저와 우리들의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4. 하지만 공의로운 복음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올해 부산에서 wcc가 개최된다고 하던데..  이러한 배도의 흐름과 함께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대적하는 세상 문화가 진리를 수호하는 성도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 때가 다 되어!  심판주 하나님께서 이 땅을 극심한 재앙과 기근으로 내리 치실 터인데.. 같이 몰살하는 길로 들어서자!는 어리석은 자들의 궤변을 분별해야 겠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영적인 메시지는 부하고 형통하고 번영하는 복된 메시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와 심판의 메시지도 함께 선포되어야 합니다.

말라기 3장 8절의 십일조와 봉헌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는다는 말씀의 선포 뿐만 아니라!  말라기 4장 5절의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는 심판의 메시지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 결 론 ]

오늘날 기독교 복음은 단단한 음식인 공의와 심판과 회개와 삶의 선한 열매를 전혀 선포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은혜, 위로, 회복, 번영, 행복, 평안의 메시지만 목회자들이 주구장창 외친 나머지~  개 돼지 처럼 살고도 천국은 따논 당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말랑말랑한 희석된 복음을 전했던 장본인 이었던 목회자들이 이제 그 본색을 드러내어~  배도와 타락을 향하여 급속으로 내딛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결국... 그러라고!   물질적인 번영의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 것일까요?  한국 교회에 말입니다.  교회를 성장 시키는 데 있어서~  온갖 불법과 투기와 세력 다툼이 빈번하고 목사들의 횡령, 배임 등이 만연하게 된 이유의 근저에는!   그 육의 욕심만을 체워주길 바랐던 성도들의 책임이 90% 이상이며!  그런 것이 나중에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주도한 목사들의 책임은 200% 일 것입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고!  아들 예수님까지 희생하여 우리를 사랑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결코 한 번 택한 백성은 내치는 법이 없다는 거짓 구원론에 착념하여~  그 후로는 오직 세상에서 잘먹고 잘되는 것에 올인을 하고만!  어리석은 한국 교회 성도들의 말로는 스스로 자처한 것이며~  스스로 분별이 없어 심판과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이지!  주도한 목사 탓 할 거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 특별 책임을 진 목회자들은 사명을 다하지 못한 대가를 갑절로 받을 것입니다. 이미 배도로 들어간 목회자들이 돌이켜 회개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유명 목사, 담임 목사 라고 해서~   분별이 뛰어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가 아님을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분들이 깨달았으면 합니다.   또한 균형있는 신앙인은 이것도 취하고 저것도 취해야 하겠지만!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배도와 우상숭배는 죽어도 취하지 말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