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부.

거인족: 네피림의 후손.

ORACLE[2030] 2017. 7. 26. 05:53

영화 300 을 보다 보면 페르시아 군대가 거인족을 데려와서 스파르타와의 전투에 참여시키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영화를 흥미롭게 표현하기 위해서 환타지적인 요소를 첨가하였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었는데, 성경에도 여러 군데 거인족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1. 창세기 6장 4절: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자이언트, 거인, 타락한 자)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2. 창세기 10장 8~12절: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 분 석 ]

정통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셋의 후손으로 보았으나, 최근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인 타락한 천사들이 육체를 입고 사람의 여자들과 이종교배를 통하여 거인족이 생겨났다는 DNA 혼합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한다고 해서 거인이 태어나지는 않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가지고 있고,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당할 때 천사들이 사람의 형상(육화)으로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노아의 홍수 심판 전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였다고 한 이유는 타락한 천사들이 육을 입고 사람의 여자들과 교합함으로 인해 그 악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하게 커졌으며, 이것은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흠없는 인간 DNA에서 태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사탄 마귀의 고도의 전략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창세기 6장 4절에는 노아의 홍수 심판 전에도 네피림이 있었지만, 그 후에도 네피림이 있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즉, 사탄 마귀의 세력은 노아의 홍수 심판 이후에도 사람의 여자들에게 들어가 DNA를 혼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창세기 10장에는 바벨탑을 쌓은 첫 용사였던 니므롯이 당대의 영웅으로 묘사되기도 하였습니다.

 

민수기 13장 17~33절: 모세가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남방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그 땅의 어떠함을 탐지하라 곧 그 땅 거민의 강약과 다소와 그들의 거하는 땅의 호 불호와 거하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의 후박과 수목의 유무니라 담대하라 또 그 땅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탐지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또 남방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송이를 벤 고로 그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칭하였더라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사무엘 상 17장 4~7절: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3 미터 정도)이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사무엘 상 17장 40~41절: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골리앗)에게로 나아가니라.

 

 

 

 

사무엘 하 21장 18~22절: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가 장대한 자의 아들 중(거인족의 아들 중)에 삽을 쳐죽였고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채 같았더라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곳에 키 큰 자 하나는 매 손과 매 발에 가락이 여섯씩 모두 스물 네 가락이 있는데 저도 장대한 자의 소생(거인족의 소생)이라 저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저를 죽이니라  이 네 사람 가드의 장대한 자의 소생(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 신복의 손에 다 죽었더라.

----------------  골리앗이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자 다윗이 돌 다섯개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소년이었으나 광야에서 양떼를 칠 때 사자와 곰을 쳐서 새끼 양을 건져낸 준비된 자였고, 그가 돌 다섯개를 가지고 나아간 중요한 이유는 블레셋 진영에는 골리앗을 포함하여 거인족 5명이 있었으므로 그들 모두를 격퇴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일루미나티 세력이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을 통하여 차원의 문인 포털(무저갱의 열쇠)을 열어 버림으로서 사악한 육화된 영적 존재들이 이땅에 나오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바닷가에 있는 사천왜성에서 있었던 조선 선조 시절 사건입니다.

 

거인(巨人)들의 전투 현장 사천왜성  

“요상한 거인(巨人)들이 쇠막대기로 성문을 마구 부수고 있다고?”
1598년 10월1일, 사천왜성의 동쪽 성문을 지키던 초병(哨兵)의 보고에 왜장(倭將) 시마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3만 명 규모의 중로군 연합군이 성벽을 겹으로 포위한 뒤 구간별로 분담해 공격해오는 통에 시마즈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공중으로는 연합군의 ‘불랑기포(佛狼機砲)’에서 쏘아대는 포탄이 빗발치듯 쏟아지고 있었다. 불랑기포는 모포(母砲·포신)와 자포(子砲)가 분리된 공성용 대형 대포였다. 포탄을 장전한 여러 개의 자포를 준비해두고 하나의 모포에 바꿔 끼워가는 방식이어서, 장전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연속 사격이 가능했다. 잇단 포탄 세례를 맞은 성벽이 서서히 깨지고 허물어지던 중이었다. 

“예. 덩치가 엄청 큽니다. 눈이 양옆으로 찢어져 올라갔고요. 수염이 좌우로 나뉘어 얼굴을 덮고 있어서 무섭게 생겼습니다.”   초병은 키가 매우 큰 거구의 병사 6명이 돌격대로 나서서, 성문을 허물고 있다고 말했다. 1만 명도 채 안되는 병력으로 필사적으로 성을 지키고 있던 시마즈는 상황이 위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시 저격병들을 불러라!” 
시마즈는 사쓰마번(薩摩藩) 소속의 다네가시마(種子島) 사람들을 수배해 거인들을 저격하라고 명령했다. 다네가시마 철포병(鐵砲兵, 조총병)들은 총을 매우 잘 다루었다. 100보 떨어진 곳의 나뭇잎도 정확히 맞추고, 날아가는 새도 쏘아 떨어뜨릴 정도로 명사수들이었다. 다네가시마는 포르투갈 사람이 일본에 처음으로 머스킷(Musket) 총을 선보인 곳이다. 그 때문에 다네가시마 사람들은 일찍부터 총 쏘는 기술을 익혀왔다.

거인들은 결국 저격수들의 철포에 맞아서 차례차례 쓰러져 갔다. 거인들을 제거한 다네가시마 철포병들은 계속 명군을 사살했다. 명군은 빗발치는 총탄을 피해 진영을 뒤로 물리려 했다.  
설상가상으로 명군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겼다. 팽신고의 진영에서 불랑기포 화약궤에 불이 붙어 크게 번져나갔다.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뒤덮었다. 명군들이 놀라 피해 달아나자, 왜군들이 기습적으로 돌격해왔다. 명나라 기병(騎兵)들은 이리저리 뛰며 헤맸다. 보병도 덩달아 우왕좌왕하다가 속절없이 일본군의 총과 칼날에 쓰러졌다. 이렇게 죽은 연합군 전사자 숫자가 7000∼8000명에 이르렀다. 너무나 어이없는 조명 연합군의 패배였다.  

일본측 자료에서는 이 전투에서 희생된 거인들을 타타르 사람들이라고 했다. 명나라가 속국 타타르에게 힘센 사람들을 파견해줄 것을 요구하자, 특별히 타타르가 선별해 보낸 사람들이라고 했다(‘음덕기(陰德記)’ 제81권). 한국측 자료에서도 거인들의 존재가 나타난다. ‘우지개(牛之介) 3명이 있는데, 키와 몸뚱이가 보통 사람의 10배나 된다(‘난중잡록’)’는 것이다.  

한편 타타르의 거인과 함께 참전한 4명의 포르투갈 해귀에 대한 전투 기록은 보이지 않다가 1599년 전쟁이 끝난 후 등장한다. 조선화가 김수운(金守雲)이 철수하는 명군들을 그린 ‘천조장사전별도(天朝將士餞別圖)’에서 해귀 4명이 보인다. 사천왜성 전투에서 희생되지 않았던 것이다. 


정유재란이 끝난 후 철수하는 명군들을 그린 ‘천조장사전별도’(天朝將士餞別圖·위의 그림). 아래 그림은 수레를 탄 해귀(海鬼)와 원병삼백(猿兵三百)이라는 깃발 아래의 원병들을 확대한 것이다. 이 그림을 설명하는 표제에는 ‘불랑국(포르투갈)의 해귀 4명은 살결이 검고, 누르스름한 머리가 방석둘레처럼 펼쳐졌어도 적선을 잘 뚫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