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 7장 3~14절: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He named it Ebenezer, saying, "Thus far has the LORD helped us." )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1. 선지자 사무엘: 하나님의 사람(the man of GOD)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림.
출애굽을 이끈 걸출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 이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이후에는 사사기에 나오는 여러 사사(JUDGE: 재판관)들이 나올 뿐 모세나 여호수아 정도의 영적/정치적 지도력을 가진 선지자가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1명의 영적 지도력이 탄생하기가 이렇게 힘든 것입니다.
사사 시대를 지나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과 불순종이 이어질 때 하나님께서 믿음의 여인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선지자 사무엘을 예비하셨습니다.
(1) 선지자 사무엘.
엘리 대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을 담당하고 있던 시대입니다.
엘리는 나이가 많았고 영적으로 무뎌질 대로 무뎌진 상태이고,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희생 제물을 사욕으로 취하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 간음을 하는 등 영적인 질서가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탄생과 사명은 그의 어머니 한나의 간절한 기도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시대로의 이행을 연결(JOINT)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고 헌신하는 종으로 쓰임받은 사무엘은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이 같은 날에 죽은 이후 이스라엘의 영적/정치적 지도자로서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 사무엘의 약점.
사무엘은 이스라엘에서 선정을 베풀어 일생동안 백성들의 존경과 신뢰를 져버리지 않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 상 8장 초반부에 나온 것과 같이 그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는 이스라엘의 사사였으나 아버지와 같이 공의롭지 못하고 뇌물을 받아 판결을 굽게하는 불순종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름부음 받아 평생을 선하고 충성된 사역을 하였지만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충성된 길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가정 교육을 제대로 못시킨 것도 아니요 밖에서는 선한 목자이지만 가정에서는 폭군에 폭언을 일삼는 비정한 아버지도 아니었을텐데 두 아들은 사무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이 자신들의 아내를 누이로 속였던 것,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이 유사하게 나타나는 것을 통하여 사무엘은 자기자신은 하나님 앞에서나 백성들 앞에서 무결점에 가까운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나 자식을 치리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은 그를 키웠던 엘리 대제사장을 답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식 교육에 실패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엘리 대제사장은 사랑과 관용이 지나쳤던 사람으로서 두 아들이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첨예한 죄악을 져질러도 그들의 죄를 강하게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약하게 책망하였으며 어떻게 보면 그들의 죄를 용납(toleration) 하였습니다. 용납이라 함은 안하는 것이 좋으나, 해도 상관이 없다는 정도입니다.
강한 책망에 해당하는 사항인데도 약한 책망에 그친 무딘 영적 분별이 엘리와 자신의 가문을 멸망과 심판으로 이끈 죄악이 되었던 것입니다.
(2) 새로운 인물.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예정하고 기름부은 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전쟁의 폐허를 딛고 개신교의 성장과 함께 충성된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많이 나타나면서 폭발적인 성장과 번영과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중대형 장로교회만 하더라도 원로목사님이 20대에 하나님께 헌신된 종으로 충성하면서 교회를 일구었고 한국 교회에 나타나고 있는 여러 병폐들을 최소화하였으며, 후임 목사님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분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쉽과 함께 새로운 인물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 상에서 보여지는 엘리 대제사장- 두 아들(홉니와 비느하스)- 사무엘- 두 아들(요엘과 아비야)의 영적 지도력의 전이는 실패하였습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이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으로 치달으며 판결을 굽게 하면서 백성들의 사욕이 폭발한 것입니다. 그 당시 중동 지방의 다른 족속들은 대부분 왕정 체재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 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람의 강력한 통치를 바라는 불순종으로 나아갔습니다.
(3) 악한 동기와 악한 열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의 동기에 의해 사울이라는 청년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아 사무엘이 기름부어 왕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사무엘 상을 여러번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아무리 하나님께 전적으로 충성하는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 선지자와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소욕과 바람의 수준에 맞는 인물을 내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겸손한 자였지만 수십년을 통치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충성하기 보다는 백성의 여론과 자기의 생각을 더 의지하였습니다. 권력의 독, 불의의 삯의 독에 취했던 것입니다.
사무엘과 같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그러한 결과를 어느 정도 예견하지 못하였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나님께서 기쁜 마음으로 사울왕을 내정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한 동기를 용납(toleration)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가 충돌하는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불순종과 악한 동기에서 발현되었으므로 반드시 사울왕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는 필연적 귀결이 아니라 악한 동기로 선택된 왕이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 선지자의 중보와 도움으로 하나님앞에서 충성된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무엘이 나이들었다고 하더라도 인생을 살아오면서 쌓았던 지혜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직분을 맡았던 그 시대 영적인 지도력이었는데, 사울은 그 사람의 조언을 듣지 않고 백성의 여론을 더 두려워하고 자신이 가진 권력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싸인(SIGN).
하나님의 영, 거룩한 성령을 받아 사역하는 주의 종에게는 반드시 다른 충성된 하나님의 종들의 충언이 있게 마련입니다. 회개를 촉구하고 돌이키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쓴소리가 되겠습니다.'
쓴소리와 비판의 소리 듣는 것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ㅎㅎ
사람은 저도 그렇고 육을 입은 제한적이고 죄와 실수가 많은 존재입니다.
인생의 여정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불순종의 길을 돌이키길 원한다는 영적인 싸인(SIGN)을 주실 때가 있으며,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섭리를 아는 지혜로운 자들은 그것을 경험하거나 보고 다시 생각해보는 영적인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 폭주(runaway)의 위험.
소위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멸망과 심판으로 들어가는 과정과 여정중에는 폭렬 기관차처럼 죄악과 불순종으로 내달리는 상황이 항상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깨어있는 주의 종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길은 죄악과 심판의 길임을 여러번 경고해 주어도 그 당사자는 무엇에 현혹되었는지? 그 길을 돌이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명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으로 진행이 되고 만다는 것인데... 달리는 호랑이 등에 타고 한참 달렸다고 하더라도 그 길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귀결됨을 깨닫는다면 큰 부상과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사울왕과 아합왕(이세벨 남편)은 여러 선지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돌이키지 못하였습니다.
2. 다윗처럼 충성된 왕.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도 그렇고 여러 다른 나라들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세상 정치와 권력이라는 것은 혼돈과 싸움과 갈등의 연속입니다. 어떤 사안과 사건에 대하여서 국민들의 여론이 둘 혹은 그 이상으로 갈려서 첨예한 논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1) 다윗의 인생의 질고.
들판에서 목양하며 하프타고 하나님을 찬양하던 어린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그 시대 영적인 지도력을 담당했던 대선지자 사무엘의 방문과 함께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기름부음 없이 다윗이 그 인생을 살았다면 그 집안의 막내로서 일평생 목양하고 선하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 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귀가 다윗이 목양하던 광야에서 홀로 찬양하던 모습을 귀하게 보았고, 그 찬양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수 사명자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은 그 인생에서 커다란 역경과 고난을 맞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던 불안하고 초조한 광야 도주 시절은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아 도주하여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지냈던 시절,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애굽에서 13년을 각종 질고를 겪었던 시절,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광야에서 40년을 보냈던 시절과 유사한 혹독한 연단과 훈련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천성은 잘 바뀌지 않으나 인생의 혹독한 질고와 고통의 담금질을 통하여 정금 처럼 새롭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2) 사명을 위한 고난과 시련.
유튜브 여러 목사들과 평신도 사역자들의 말씀 메시지를 듣다보면 사람의 완고함과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책망과 함께 고난과 시험이 닥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혹자들은 그 때 빨리 고개를 숙이고 겸손하게 순종하게 되면 그 고난과 시련의 기간이 짧아진다고 하는 것을 여러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단편적인 가르침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THE MAN OF GOD)으로 준비되고 연단되고 훈련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 동안 수없는 어려움 가운데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넘어 반역에 대응하고 수습하여야 했으며,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다니며 목숨의 위협가운데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자기 손에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MISSION)을 완수하기 위해 제련되고 담금질을 받았다는 것이고 인간의 생각으로 그 기간을 가늠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특정 정치인에 대한 다윗왕과 같은 자! 라는 예언들.
유튜브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여러 여자와 남자 예언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지난 15년 이상을 보아온 결과 대부분 그러니까 99% 이상의 특정 정치인에 대한 예언이 현실과 들어맞지 않았으며, 맞았다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열매를 맺는 것을 보았습니다.
좌파도 그렇고 우파도 그렇고 자기 정치 성향에 맞으면 좋게 예언을 하면서 다윗을 소환하곤 하였는데, 제가 여러번 경고한 바와 같이 "자기 마음의 소욕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가져다 이용하는 사적인 예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육의 죽음이후 천국의 최고 영적 지위에 해당하는 "여호와의 회의(THE COUNCIL OF THE LORD)"에 들어가는 인물입니다.
다윗처럼 순전하고 충성된 하나님의 도구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여러 사역자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특정 정치 세력의 선거 운동에 이용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으며, 그들의 대부분은 "예수 점쟁이"의 반열에 올라 장차 하나님의 전능하신 심판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극우 / 보수 우파 세력을 지지하는 여선지자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것으로, 들어보면 형편없는 자기 생각에 지나지 않는 상황판단과 환상과 계시 수준입니다. 자기 정치 성향에 맞는 자기들의 입맛을 맞추어주는 예언들을 지속적으로 내놓다 보니 신앙이 좋다는 일반 평신도들이 아멘! 아멘! 하고 많이 따라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4) 전혀 다른 상환판단들.
제가 여러번 좌파 우파 정치 세력 운동에 지나치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것을 여러번 당부드리는 이유는 그러한 미혹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극좌 - 중도좌 - 중도 - 중도우 - 극우와 같이 크게 5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 정치 성향은 어떤 사람이 자기 정치 성향에 맞는 정당과 정치 세력을 지지하든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된 천부인권입니다.
따라서 목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설교단에서 특정 정치 세력을 하나님의 공의라고 선포하면서 정치 편향적인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하게 되면, 헌법과 법률에 제시된 정교분리 원칙을 어기게 되면서 성도들의 참정권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우선이다! 를 운운하고 있는데 반대편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은 사안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런말을 하고 정치 활동도 일정 수준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으면 복음 이외의 것으로 교회가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뇌구조 자체가 극우 수구 꼴통 친일 매국노라는 비판과 극좌 종북 좌파 빨갱이라는 비판으로 정해지다 보니까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원래 정치 세력 싸움은 그 진영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다투는 것이고 그로인해 정해지는 입법 사항의 통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치열하고 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세상 정치 싸움 어젠다를 교회가 가지고 와서 이렇다 저렇다 하다 보면 아수라판이 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전세계적인 흐름인 차별금지법(동성결혼합법화)에 대하여서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교회의 주도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좌파 우파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신앙이 좋다는 수많은 예수 점쟁이 예언가들을 속출하면서 그 예언하는 자들과 그것을 듣고 아멘 아멘 하면서 따라가는 자들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는 예언을 내놓으려면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 얘기해야 하며, 나중에 현실 세계에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교회와 성도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심정으로 자신의 과오를 회개하고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겸손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사역자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자기 욕심을 따라 정해진 심판의 때까지 거짓 예언을 남발하면서 폭주할 것으로 보입니다.
[ 결 론 ]
사무엘이 블레셋과 싸워 이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의미로 에벤에셀을 얘기하였습니다. 오늘날 번영신학과 성공주의 메시지에서는 이것을 인생의 성공과 행복으로만 매치시키고 있는데, 반쪽만 맞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도우심과 축복이 세상의 가치관에 따른 성공과 행복에 의해 좌우되고 제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 이 세상 거대 바벨론 조류를 거스르는 문제.
불법의 구조가 만연하고 촘촘한 그물망 처럼 진행이 되다 보니까,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과 순종의 메시지를 대적하고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신앙 양심과 신앙의 정절을 내팽개쳐 버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대형교회 목사들과 그 교회에서 장로와 집사라고 하면서 큰 사업한다는 분들과 정치인이라는 분들을 경험해 보면 예수 이름을 파는 사기꾼인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이며, 그 불법의 구조와 불법의 조류를 거스르는 것이 심히 어렵습니다.
정통 기독교 교회안에서 유명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헌금 도적질(수십억에서 수백억 수천억), 교단 총회 정치 세력 싸움질, WCC와 WEA와 카톨릭과 각종 이방 종교와 연합이라는 마지막 때 대배도는 거스르기 힘든 거대 조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천국 구원의 길은 좁고 협착한 오솔길, 주님이 제시한 구원의 길은 물줄기를 거슬러 노를 저어 올라가야 하는 것임을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극소수입니다.
(2) 7째 인 이후 1차 휴거.
이미 영계/물질계에서 계시록의 4말탄 천사장들의 "인 사역"이 진행이 되고 있다고 여러번 알려드렸습니다. 인 사역은 나팔 재앙과 대접 재앙 가운데서도 가중되고 확장될 것입니다.
저의 사역은 여러 일반 성도들을 위한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님 신부 반열의 성도들(의의 겉옷 + 하나님의 인)로 준비되어 7째 인 이후 예수님의 공중강림이 있을 때 첫째 부활체를 입음과 동시에 휴거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까지 우리를 도우시는 영적인 보호와 축복의 역사가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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