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후서 7장 8~11절: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 세상 근심 걱정 염려.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고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각종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것은 육을 입고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 구조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일 것입니다. 일종의 불안증 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저도 인생을 살아오면서 지난 여정을 돌이켜 보면... 즐겁고 밝고 희망찼던 때도 있었지만 힘든 일 가운데 고난의 여정을 지나야 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 군입대 시절.
저는 20살 이전에도 나름 힘든 때가 있었지만 군입대 시절에 소위 풀린 군번(바로 위 선임병들과 10달 이상 차이가 남)이 되면서 좋은 듯 하였으나, 신앙이 좋았던 동기 A군과 함께 선임병들에게 많이 맞았었습니다.
원래 구타가 없어지던 시기였는데 제가 있던 곳이 1968년 초에 북한 124부대 소속 31명이 임진강을 도하하여 청와대를 습격하고자 침투하였던 소위 "김신조 사건"이 있었던 초소였습니다. 1개 대대가 산과 들판 가운데 이격이 되어 있었고 또 1개의 중대가 독립중대로 나가 있었으며, 그 중 1개의 소대가 김신조 일당이 넘어온 임진강 변을 지키는 독립소대로 운영이 되었던 것입니다.
독립중대 시절에는 세면장을 생전 처음보는 전기봉을 물에 넣어서 씻는 물을 덥히곤 하였는데, 감전이 무서워서 씻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빼치카? 라고 하는 것도 보았는데, 연세드신 분들은 군대 내무반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빨래는 전부 손으로 하여야 했고, 화장실도 엄청나게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 때 많이 맞다 보니까... 하루라도 그냥 지나가면 뭔가 심심할 정도가 되었는데, 급기야 한 여름에 반바지 반팔을 입은 상태로 막사 뒤에서 눈을 감고 저와 동기를 비롯한 후임병들이 모기가 수백마리 달라붙는 가운데 견뎌야 하는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저도 많이 맞았었지만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고 교회에서 찬양 인도를 하던 동기 A군은 작은 실수로 엄청나게 군화발에 밟혀서 얼굴이 만신창이가 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미워하고 때릴 수 있는 곳이 군대이며, 그러한 폭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간부들을 보면서 이 세상 구조가 그렇다 !!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대할 때까지 그 선임병들의 주소를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 "동해보복: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도가 아니라 10배 20배 갚아주려고 밤마다 권투와 윗몸일으키기를 하였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운동 열심히 하는 기이한 사람으로 보았겠지만, 저의 내심에는 보복의 칼날이 항상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죠.
@ 낙타 병사 사건: 각종 동물을 많이 닮은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의 소대 후임병 중에는 키는 185 정도인데 얼굴이 낙타를 닮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정말 낙타를 그렇게 닮을 수 있을까?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상체는 길면서 하체는 또 짧아서 태권도 집체교육 받을 때 자세 안나온다고 간부들과 선임병 조교에게 욕을 많이 먹었었는데, 이 친구가 사람이 착하면서도 유해서 소위 "고문관" 기질이 있었습니다.
연대 측정 훈련(연대 전투단 훈련)을 앞두고 2주 전 부터 "전투준비 준비태세"를 하루에도 몇번씩 하였는데,
이 낙타 병사가 화생방 상황에서 방독면을 쓰고 리어카를 끌고서 탄약고에서 탄약과 수류탄등을 실어서 다른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는 임무를 실행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분대원 5명이 리어카를 끌고 갔는데 방독면을 쓰고 있는 상태에서 사과 궤짝 같은 탄약통을 꺼내어 싣고 여기저기 나누어 주다보니 1명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낙타 병사가 탄약고에 있던 다른 소대 리어카를 따라가 몇시간 동안 상황 파악을 못하고 다른 참호 속에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문관에는 크게 2가지 정도의 유형이 있는데 일도 못하면서 대들기만 잘하는 유형과 낙타 병사 처럼 너무 착하고 법없이도 살 사람이지만 상황파악이 부족해서 안타까움을 사는 유형이 있습니다. 아무튼 후임병 낙타 병사 때문에 제가 선임병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 세상 근심.
그 선임병들이 제대하던 날 저는 분대장 교육대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우리 소대원들은 동기 A군의 지시로 파티를 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후로 다른 중대에 새로 편제된 K-4유탄 기관총 소대로 가게 되었지만, 그곳에서도 알력과 갈등은 상존하였습니다. 밤마다 81MM 박격포 소대 고참들이 불러내어 정신교육을 시키곤 하였는데, 저도 한 성격을 하는 면이 있어서 큰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군 생활을 끝내고 제대하고 난 후에도 걱정할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가족 내부에서 이러저러한 사건 사고들이 이어지면서 인간관계를 많이 접어야 하는 상황에 까지 직면하였습니다.
인생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저의 폐부에 까지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 20대 중/후반 시절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상황의 강약이 있었을 뿐 근심 거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 Godly sorrow.
고린도 후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 살기에도 바쁘고 할 일들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근심이 있다는 말인가? 생각이 되었습니다.
@ 신앙에서 떠나 유리 방황할 위험.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여러 내용을 보면 올바른 신앙의 노선에서 벗어나 거짓 진리와 세상의 것들로 부터 침해받는 것을 우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 만나다 보니 예전에 하나님 믿었던 분들 중 상당수가 어떠한 게기로 인해 신앙을 져버리고 그냥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강물 줄기를 노를 저어 올라가는 형국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세상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만큼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널리 퍼진 번영과 성공 신학은 세상의 조류를 마시고 타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함.
고후10장 3~5절: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 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1) 견고한 진(STRONGHOLD).
사탄 마귀가 이 세상의 임금으로 서게 되면서 수천년 동안 이 세상에 형성하여 놓은 거짓된 사상 체계와 세력을 무너뜨리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두움은 빛이 비추이면 드러나게 되며 물러나게 되어 있는 것 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모든 악의 세력과 권세를 멸하실 것입니다.
(2) 모든 이론(ARGUMENTS AND EVERY PRETENSION).
영어로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난 주장과 모든 허위를 무너뜨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것들, 세속의 것들로 진리를 대체하여 일어난 모든 것들을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 결 론 ]
성령으로 거듭났어도 세상에서 육을 입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근심 걱정이 사라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나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병들었다가 다시 회복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세상 살아가면서 당면하는 근심 걱정 거리들 말고! 아버지하나님이 새로 주신 생명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거룩한 사명이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과 일정 정도 분리되고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중요한 것이 있다면, 세상의 것을 자신의 가치관과 선악 판별의 기준으로 삼게되면 나중에 반드시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정치 좌파 우파 나뉘어서 싸우는 것도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여러 서신서의 중점은 바로 여러 교회들과 성도들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바로 세우는 것이었는 바, 우리는 피차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근심을 따라 우리의 삶을 "회개"의 열매로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 앞에서 전과자.
저는 세상에서는 전과가 없는 사람이지만, 아버지하나님의 거룩한 계명 앞에서는 전과가 무수한 자임을 고백합니다. 성경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저의 죄들을 지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근심케 하는 것이 실체적 진실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것을 잘못된 신앙! 이나 잘못된 믿음! 이라고 하지 않고,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고 정리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입은 자들은 자신이 죄인 되었을 때에 아버지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확증해 주신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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