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글.

양면성: 변론(논쟁)의 필요성과 그 한계.

ORACLE[신탁] 2018. 1. 1. 05:08

사도행전 17장 16~34절: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하다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reason)하니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dispute with)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1.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바울이 변론함.

사도 바울이 여러 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과 논쟁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gods)이 있는 곳이며 철학과 문화가 융성했던 곳으로서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섬이나 낙후된 곳에서 사역을 할 때에는 표적과 기사(signs and wonders)를 일으켜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으나, 지적 수준이 상당한 사람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변론과 논쟁의 방법을 취한 것입니다.


(1) 변론과 논쟁의 필요성.

저는 논쟁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혹은 "바른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그것에 임하는 때가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 유사 이단 교회들에서 말씀의 의미를 변개하고 수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시금석과 같은 교리를 무너뜨리려 할 때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이나 제칠일 안식일 같은 곳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제한하면서 미카엘이 예수님이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구약의 안식일은 폐해 졌는데 토요일 예배를 고집한다든지..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든지..  이 지구상에서 영원 천국이 이루어 진다든지..  영혼 소멸설이나 지옥의 영원성을 부정한다든지 하는 것 등등입니다.


@ 사람이 죽어서 구천을 떠돈다는 주장.

제가 살고있는 집 근처에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의 영향을 받은 베뢰아 아카데미 계열 교회가 있는데 우연히 그 교회 성도분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첫째 부활이나 마지막 때에 대하여서는 일반 교회 사람들 보다 훨씬 잘 알고 계시던데 사람이 죽어서 구천을 떠돈다는 얘기를 하였습니다.  구약 노아의 시대에 120년의 사람의 수명 연한을 두고 그 이전에 죽은 사람들이 120년 연한이 차기까지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이 세상을 떠돈다는 것인데... 귀신의 영들이 죽은 사람의 형상으로 오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축사할 때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그렇게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 귀신의 영들의 형상.

죽은 가족의 형상으로 얼마든지 가장하여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악한 영들의 실체입니다. 저도 그러한 경험을 자주 하였었고, 특히 몇 번 가위를 눌린 적이 있었는데 눈을 감고 있어도 그 귀신들의 형상이 보였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민감한 분들은 눈을 뜨고 있어도 색동 옷을 입은 아기동자를 보거나 흰 저고리를 입은 처녀귀신 형상을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제가 본 것 중에는 검은 고양이 형상도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는 명확하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타락한 천사들인 악한 영들은 총 4가지 등급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저는 통치자들(정사들)이 가장 낮은 등급의 영들이라고 분석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친숙한 형상 혹은 흉측한 형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4번째에 해당하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은 루시퍼의 직속 장군들(general 혹은 prince)로서 국가나 대륙을 지배하고 있다고 합니다.


@ 성경의 무오류성을 대적.

성경 필사본이 여러가지 이고 변개가 수없이 되었다고 하면서 그것의 정경성을 부정하거나 진리되는 말씀을 부정하는 불신자 혹은 이단자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킹제임스 성경이 가장 우월하다고 하면서 그것을 한글로 번역해 놓은 것을 다른 성경보다 우위에 놓기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제까지 여러 성경들을 살펴본 바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며, 어떤 활자화된 부분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원의 메시지와 성령 세례라는 은혜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고 특정인에 대한 구원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간혹 불신자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성경말씀의 진리를 비웃고 깔아 뭉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저도 구원받기 전에는 그런 자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합니다.


2. 변론(논쟁)의 한계. 

세상 각종 종교인들도 나름의 교리를 가지고 있고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하는 잡다한 것들이 많이 있어서 사실 진리 논쟁이 가속화 되면서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로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또한 예전에 교회를 다녔던 자들 중에 나중에 신앙을 잃어버린 자들 중 굉장히 성경 말씀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비판적이 되어서 이것도 잘못되었고 저것도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1. 무익한 논쟁.

그 영혼이 안타깝고 반드시 구원받았으면 해서 애써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내밀한 것들을 전할 때가 있는데..

세상의 영이 사로잡고 있어서 전혀 다른 얘기를 해버리는 사람들을 보곤 합니다. 여기서 세상의 영이란 것은 특별히 귀신이 들리지는 않았는데 그 사람의 세속적인 가치관과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세속의 조류를 이끄는 영이 되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에 대한 무지로 대화를 내달리기 때문에 몇 시간을 얘기해주어도 제자리를 맴돌고 맙니다.  또한 이단 사이비 집단의 거짓 교리에 감염된 자들도 비슷한 면이 있어서 아무리 그 성경 말씀이나 교리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얘기를 해 주어도 틀린 것을 계속 고수해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 이단 사이비 집단의 열심.

인터넷 카페에서 불신자들이 기독교인들의 안하무인적인 전도 방식에 대하여 불만과 비판을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막 함부러 집 초인종 눌러서 들어가려 한다든지 버스나 지하철에서 무례하게 예수를 전하는 무리에 대하여 그런 얘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물론 저도 예전에 노방전도 하면서 무리수를 둔 적이 있기는 하지만... ㅎㅎ     대부분의 정통교회 교인들은 막나가지는 않죠.

제가 이제까지 지켜본 바로는 이단 사이비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엄청난 열심으로 내닫는 것을 본 적이 많습니다.  불신자들이나 타종교인들이 볼 때에는 게나 고동이나 똑 같은 종자들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2. 논쟁하다가 서로 상처주는 것.

논쟁을 하게 되면 서로의 논리를 반박해야 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감정이 상하게 되면 진리를 논외로 하고 인간관계가 깨지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 때문에 진리를 수호하지 못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마냥 피할 수 만은 없는 것입니다.


[ 결 론 ]

12사도와 사도 바울이 행했던 복음 전도 방식은 귀신 축사와 병고치는 능력 전도와 함께 변론하고 논쟁하는 것 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논쟁이 필요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변론할 수 있으며, 다만 그 한계도 있기 때문에 지혜로운 선에서 마무리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진리에 대한 지속적인 공부와 교정.

간혹 목사님들 설교를 듣다보면 오늘날에는 환상과 계시가 종결되었다고 하는 분들, 적그리스도와 짐승의 표는 상징이라는 분들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어떤 부분은 잘 나가다가 엉뚱한 소리를 많이 해버립니다.

몸에 심는 칩 형태의 것이 666 짐승의 표로 쓰일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 눈에 보이지 않고 상징에 불과한 표를 받지 않으면 사고 팔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  앞으로 가상화폐 관련하여 더 이쓔화 되면서 짐승의 표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